3/20/2017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깨닫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티모테오 1서 2:4
God our savior, who wills everyone to be saved and to come to knowledge of the truth.
1 Timothy 2:4
오늘은 이스마엘에 관해 묵상해 보겠습니다.
이스마엘은 아브라함과 사라의 여종인 하가르 사이에서 태어납니다. 이스마엘이 태어났을 때 아브라함의 나이는 86세였습니다. 이복동생인 이사악은 약속의 자녀이고 이스마엘은 욕정에서 나온 자녀이지만 아브라함에게도 그리고 하느님에게도 이스마엘은 소중한 존재였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아이를 얻지 못해 궁여지책으로 하가르를 개입시켜 이스마엘이 태어납니다. 그로부터 13년이 지나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자손이 크게 번성하고 후손중에 임금도 나온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이스마엘이나 당신 앞에서 오래 살기를 바랍니다”라고 아룁니다. 그러자 하느님께서는 장차 사라와의 사이에서 태어날 아들 이사악이 계약의 상속자가 될 것임을 선언하신 후에, “이스마엘을 위한 너의 소원도 들어 주겠다. 나는 그에게 복을 내리고, 그가 자식을 많이 낳아 크게 번성하게 하겠다. 그는 열 두 족장을 낳고, 나는 그를 큰 민족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나서 이스마엘은 13세의 나이에 아버지와 아버지의 종들과 함께 할례를 받습니다.
사라에게는 비록 자신의 몸에서 태어난 아들은 아니지만 하가르가 아브라함의 소실이므로 이스마엘은 사라에게도 유일한 자식이었습니다. 이스마엘은 이사악이 태어나기 전까지는 주목과 귀여움을 받으며 자라났습니다. 그런데 이스마엘이 14세가 되던 해, 이사악이 태어납니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이사악에게만 집중됩니다. 한순간 이스마엘은 소외되어 버립니다. ‘이사악이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내가 유일한 자식으로 사랑을 받을텐데..’하는 생각을 하며 질투와 시기심으로 이사악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몇년후 이사악이 젖을 떼던 날 아브라함은 큰 잔치를 베풉니다. 갈라티아서 4장에서는 “그때에 육에 따라 태어난 아들이 성령에 따라 태어난 아들을 박해한 것처럼 지금도 그렇습니다”라고 할 것처럼 이스마엘이 이사악을 나쁜 마음을 가지고 놀아주던 그의 행동이 사라의 눈에 거슬리게 됩니다.결과는 엄마인 하가르와 함께 집에서 쫓겨 나는 것입니다. 비록 이스마엘이 장남이지만 사라의 분노와 아브라함의 허락으로 모자는 눈물을 삼키며 떠나갑니다.
이스마엘은 어머니와 함께 광야에서 길을 잃고 물이 바닥나서 죽을 위험에 처합니다. 그는 아브라함의 아들답게 곤경에 처하자 하느님께 부르짖었고 하느님께서는 이스마엘의 소리를 들으십니다.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광야에서 우물을 발견한 모자는 파란광야에서 터를 잡고 살게 됩니다. 이스마엘은 광야에서 살며 활잡이가 됩니다. “그는 들나귀같은 사람이 되리라. 그는 모든 이를 치려고 손을 들고 보든 이는 그를 치려고 손을 들리라. 그는 자기의 모든 형제들에게 맞서 혼자 살아가리라.”(창세기16장)라는 예언이 실현됩니다. 그런 그에게 이집트인 하가르는 자기 아들에게 이집트인 아내를 구해 줍니다.
아브라함은 죽기 전에 소실들이 낳은 자식들에게는 한 몫씩 재산을 나누어주고 그외 모든 재산을 이사악에게 물려줍니다. 그런 다음 그들을 이사악에게서 떼어내어 동방으로 보냅니다. 아브라함이 죽자 이사아과 이스마엘은 막펠라동굴에 아브라함을 안장합니다. 이스마엘은 하느님의 약속대로 열 두 아들을 낳고 그들은 열 두 부족의 족장들이 되었으며 그의 딸 바스맛은 이사악의 아들인 에사우와 결혼합니다. ‘주님께서 들어주신다’라는 뜻의 이스마엘은 137세의 나이로 죽음을 맞이합니다.
이스마엘의 후손은 시리아와 아라비아에 정착했고 그의 후손인 오늘날의 아랍인들은 아브라함의 장자는 이스마엘이며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약속의 자녀라고 주장합니다. 이사악의 자손인 이스라엘 역시 이사악이 약속의 자녀이며 땅에 대한 권리도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스마엘의 후손인 이슬람교인과 이사악의 후손인 유다교인 모두 아브라함을 신앙의 성조로 생각합니다. 두 민족 모두 예루살렘을을 성지로 생각하여 역사상 성지탈환을 위한 전쟁은 끊이지 않고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사라와 하가르, 이사악과 이스마엘로 부터 시작한 갈등은 4천년이 넘는 지금도 해결의 기미도 보이지 않은 채 깊어갑니다.
이사악과 이스마엘의 뿌리는 아브라함입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하느님입니다. 종교가 다르고 민족이 다르다고 서로 반목하는 것은 하느님을 거스르는 일일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깨닫게 되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주님, 나와 다름을 받아들이지 않는 편협한 사고가 분쟁을 낳게 됨을 압니다. 글로벌시대를 살고 있으면서도 사고는 4000년 전과 다르지 않음에 스스로 놀라워 하기도 합니다.
주님, 네모보다 동그라미처럼같이 살기를, 담장을 허물며 살기를, 세상 사람들 모두 형제임을 받아들이며 사는 열려진 사고를 가지며 살기를 청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