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3/2016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요한 21:17
Lord,you know everything, you know that I love you
John 21:17
그들이 아침을 먹은 다음에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어린 양들을 돌보아라.”예수님께서 다시 두 번째로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예수님께서 세 번째로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세 번이나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시므로 슬퍼하며 대답하였다.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가 젊었을 때에는 스스로 허리띠를 매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다. 그러나 늙어서는 네가 두 팔을 벌리면 다른 이들이 너에게 허리띠를 매어 주고서, 네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어,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할 것인지 가리키신 것이다. 이렇게 이르신 다음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나를 따라라.” 하고 말씀하셨다. (요한복음 21장)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당신에 대한 사랑을 세 번씩이나 확인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왜 이렇게 사랑을 확인하시는 가에 대한 의문이 생깁니다. 한편으로는 베드로가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배신하였기에 이러한 확인을 통해서 베드로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부담을 덜어주시고자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께서는 “너는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실 때 ‘아가페오’라는 단어를 씁니다. ‘아가페로 즉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느냐’는 뜻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지난날 자신의 잘못을 잘 알기에 무조건적인 투신의 의미가 담긴 아가페적인 사랑의 말을 감히 사용 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필레오, 즉 형제애적인 우정의 의미가 담긴 필레오라는 동사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베드로의 마음을 잘 아시는 예수님께서는 세 번째의 질문에서는 아가페가 아닌 필레오라는 동사를 사용하십니다. 비록 사랑에 인간적인 한계가 있겠지만 그러한 인간적인 한계를 인정하시면서 당신의 양들을 잘 돌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정신부님의 말씀입니다)
따뜻하고 정겨운 아침식사 이후, 예수님께서는 실패하고 넘어졌던 베드로에게 세 번 질문하십니다. 당신께서 지어 주신 ‘반석’이라는 뜻의 베드로 즉 케파라는 이름으로 부르지 않으시고 ‘갈대’라는 의미의 원래 이름인 시몬이라고 부르십니다. 갈대처럼 흔들리기 쉽고 인간적인 한계가 있지만 상한 갈대도 꺾지 않으시는 예수님께서는 부족해도 결코 버리지 않으신다는 뜻을 드러내신 것은 아닐런지…
그리고 질문하십니다. “너는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이 질문에는 어떤 이보다, 어떤 가치보다 더 당신을 사랑해 달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나를 가장 사랑해 주시기를 바라는 것처럼 예수님께서도 당신을 가장 사랑해 주기를 바라시면서. 필레오 사랑으로 우리가 당신을 사랑한다하더라도 당신께서는 아가페 사랑으로 베드로와 우리를 사랑하실 것임을. 그리고 앞으로 닥칠 무서운 박해에서도 세 번씩이나 사랑 고백한 것을 잊지말고 또 다시 배신하지 말기를 바라시는 것은 아닐지….
이사야를 통해 이스라엘백성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예전의 일들을 기억하지 말고 옛날의 일들을 생각하지 마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하려한다”는 구절이 생각납니다. 배신당한 사람보다 때로는 배신한 사람이 더 힘든것처럼, 제자가 배신했던 과거의 상처를 기억하지 말고 상처를 딛고 일어서라는 것은 아닌지….
예수님께서는 어린 양, 당신의 양들을 베드로에게 맡기십니다. 다른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다시금 베드로가 지도자임을 알게 하십니다. 모든 제자들도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갔지만 수제자인 베드로마저 도망간 것에 대한 다른 제자들의 혹시 모를 반대를 미리 경계하시려고 하신 것인지…
세상에서 미움받고 결국에는 수난끝에 죽어갈 것을 알려주시고, 죽음은 영광으로 가는 길임을 알게하십니다. “나를 따라라”라는 말 속에는 스승이 갔던 길을 따라가고 스승처럼 십자가죽음을 거부하지 말고 받아들이라는 애절하면서도 단호한 명령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닐런지….
주님, 세 번씩이나 당신을 배신한 제자에게 사랑을 확인하시는 당신! 그런데 제게는 사랑의 확인보다 제자를 향한 당신의 ‘사랑고백’처럼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요?
그리고 당신께서 제게는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으로 들리는 것은 왜일까요?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너는 아느냐?” “내가 너를 얼마나 끔찍히 사랑하는지 너는 아느냐?” “너가 나를 배신해도 나는 너에 대한 사랑을 멈추지 않을 것임을 너는 아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