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2016
너희는 듣고 또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리라. 마음은 무디고 귀로는 제대로 듣지 못하며 눈은 감았기 때문이다
마태오 13:14-15
You shalll indeed hear but not understand, you shall indeed look but never see. Gross is the heart of this people, they will hardly hear with their ears, they have closed their eyes.
Matthew 13:14-15
오늘은 헤로데 아그리파스 2세에 관하여 묵상해 보겠습니다
격정의 시대를 살았던 아그리파스 2세는 헤로데 왕가의 마지막 왕입니다. 아버지인 헤로데 아그리파스 1세가 죽을 때 겨우 17세였기에 로마는 그에게 실권을 주지않고 4년간을 더 로마에서 머무르게 한 후, 서기 50년 칼키스지방만을 다스리게 합니다. 그는 네로와 좋은 관계를 유지했던 관계로 네로가 황제가 되자 갈릴래아 지역 전체와 요르단 강 동쪽의 데카폴리스 지방까지 다스리게 됩니다. 헤로데 필립포스와 안티파스가 다스리던 땅이었습니다. 그럼으로써 유다의 실질적인 통치자가 되어 대제사장을 임명하는 권한도 위임받게 됩니다. 그는 친로마정책을 폅니다
서기 66년 로마 행정관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에서 은 17탈란트가 탈취된 사건이 발생합니다. 분개한 유다인에 의해 폭동이 일어나고 많은 로마인들이 살해됩니다. 로마는 반란을 막기위해 전력을 쏟았고 아그리파스가 중재에 나서지만 실패합니다. 이로써 유다 독립전쟁이 발발하게 됩니다. 아그리파스를 비롯해 많은 유다의 기득권 층은 로마를 향한 소수민족의 가망없어 보이는 전쟁을 말렸지만, 유다교의 열성분자들은 바위에 계란던지기를 시작합니다. 70년 로마의 티투스 장군은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반란군을 섬멸합니다. 아그리파 2세는 로마군을 도왔고 전쟁이 끝난 뒤에는 더 넓은 영토를 할당받게 됩니다.
아그리파스 2세는 사도행전 25장에 등장합니다. 아그리파스와 그의 누이 베르니케가 카이사리아에서 지내는 동안, 하루는 그곳 총독인 페스투스가 아그리파 2세에게 바오로의 이야기를 꺼냅니다. 바오로라는 죄수는 이미 죽었는데 살아있다고 주장하는 예수라는 사람과 관련되었다고 이야기하자 아그리파스는 호기심 때문인지 바오로를 만나고 싶어합니다. 바오로는 아그리파스앞에서 철저한 유다인으로 살면서 그리스도인을 박해했었으나 다마스쿠스로 가는 도중에 만난 주님을 만나고 회심한 일,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에 관해 이야기하며 “아그리파스 임금님, 예언자들을 믿으십니까? 믿으시는 줄 압니다.”라고 말합니다. 아그리파스는 “당신은 조금 있으면 나를 설득하여 그리스도인으로 행세하여 만들겠군”하자 바오로는 “조금 있듯 오래 있든, 나는 임금님만이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이들이 이 사슬만 빼고 나와 같은 사람이 되기를 하느님께 기도합니다.”라고 합니다. 아그리파스는 바오로가 무죄임을 확신하지만 바오로가 황제에게 상소하였으므로 그를 로마로 보냅니다.
아그리파스와 동행한 베르니케는 서기 28년경 헤로데 아그리파 1세와 키프로스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드루실라와 자매이고 아그리파스와 남매간입니다. 그녀와 아그리파스는 로마 황실에서 어린 시절을 같이 보내다가 베르니케는 어린 나이에 마르쿠스와 결혼합니다. 그녀는 마르쿠스가 죽자 삼촌인 칼키스의 왕 헤로데와 결혼하여 두 아들을 낳았으나 헤로데 역시 죽고 맙니다. 그녀는 그 이후에 아그리파스와 함께 지내며 근친상간을 범하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자 유다교로 개종하기로 한 길리기아와 왕과 결혼합니다. 오빠와의 결혼은 당시 왕족 사이에서는 드문 일이 아니었으나 유다인들은 율법을 내세워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오래지않아 남편을 버리고 다시 아그리파스에게로 돌아갑니다. 아그리파스와 베르니케가 카이사리아를 방문한 것은 이 기간입니다. 서기 70년, 예루살렘을 점령한 티투스 장군은 혼자된 자기보다 열 살이나 연상인 베르니케를 아내로 맞이하려 로마로 데리고 갑니다. 하지만 로마 국민이 유다인을 거부하는 바람에 반대에 부딪히자 포기합니다.
헤로데 아그리파스는 93년까지 생존했다고 추정하며 자녀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헤로데 아그리파스 2세를 마지막으로 130년의 헤로데 왕조는 끝나게 됩니다. 유다 봉기와 헤로데 왕가의 몰락으로 예루살렘과 유다교는 그야말로 전례 없는 철퇴를 맞았고, 예루살렘이라는 이름마저 일시적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이것이 1세기 로마의 준자치 지역이던 헤로데 왕국의 끝이었습니다.
바오로는 자기 변론을 하면서도 아그리파스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아그리파스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아그리파스는 마음은 무디고 귀로는 제대로 듣지 못하며 눈은 감았기 때문입니다
주님, 저는 사소한 것에 얽매어 지나간 시간속에 머무르며 괴로워하고 후회합니다. 예민하여 상처속에 저를 가두어 두기도 합니다. 때로는 세상을 살얼음 걷는 듯 살아가는 제 자신을 바꾸어보고 싶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세상은 무디게 살아가고, 당신을 만나고 듣고 느껴보는 것에는 살얼음을 걷는 듯 한 마디도 한 순간도 놓치지 않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