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8/2016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요한 8:7
Let the one among you who is without sin be the first to throw a stone at her
John 8:7
예수님께서는 사형 선고를 받으십니다. 유다는 예수님께서 사형 선고를 받으신 것을 보고 뉘우치고서는, 그 은돈 서른 닢을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에게 돌려주면서 말합니다. “죄 없는 분을 팔아넘겨 죽게 만들었으니 나는 죄를 지었소.” 그러나 그들은 “우리와 무슨 상관이냐? 그것은 네 일이다.” 합니다. 유다는 그 은돈을 성전 안에다 내던지고 물러가서 목을 매달아 죽습니다. 수석 사제들은 그 은돈을 거두면서, “이것은 피 값이니 성전 금고에 넣어서는 안 되겠소.” 하고 의논한 끝에 그 돈으로 옹기장이 밭을 사서 이방인들의 묘지로 쓰기로 합니다. 그래서 그 밭은 오늘날까지 ‘피밭’이라고 불리게 됩니다.그리하여 예레미야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집니다. “그들은 은돈 서른 닢, 값어치가 매겨진 이의 몸값, 이스라엘 자손들이 값어치를 매긴 사람의 몸값을 받아 주님께서 나에게 분부하신 대로 옹기장이 밭 값으로 내놓았다.” (마태오복음)
“형제 여러분, 예수님을 붙잡은 자들의 앞잡이가 된 유다에 관해서는, 성령께서 다윗의 입을 통하여 예언하신 성경 말씀이 이루어져야 했습니다. 유다는 우리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우리와 함께 이 직무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자는 부정한 삯으로 밭을 산 뒤, 거꾸로 떨어져 배가 터지고 내장이 모조리 쏟아졌습니다. 이 일이 예루살렘의 모든 주민에게 알려져, 그 밭이 그들의 지방 말로 ‘하켈 드마’라고 불리게 되었는데, ‘피밭’이라는 뜻입니다.사실 시편에 ‘그의 처소가 황폐해지고 그 안에 사는 자 없게 하소서.’ 또 ‘그의 직책을 다른 이가 넘겨받게 하소서.’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도행전)
유다는 평생 세 번의 중요한 선택을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 일, 스승을 배반한 일 그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입니다. 그는 두번째 선택이 크게 잘못되었음을 깨닫습니다. 그는 스승을 판 대가로 받은 은전 서른 닢을 들고 돈과 예수님의 목숨을 거래했던 사람들을 찾아갑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와 무슨 상관이냐? 그것은 네 일이다”라는 무미건조한 한 마디말만을 들을 뿐입니다. 그는 잘못을 뉘우치고 후회하며 찾아간 그들에게서조차 동지가 아닌 타인이 되어 버립니다. 발등을 찍고싶지만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는 견딜 수없는 양심의 가책을 받고 그 괴로움을 벗어날 방법으로 그리고 속죄의 방법으로 죽음을 선택합니다
유다와 같은 제자이며 예수님을 배신할 것이라는 예고를 받은 제자가 있습니다. 수제자인 베드로입니다. 그또한 예수님을 배신하였고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슬피웁니다. 유다는 잘못을 후회만 했다면 베드로는 회개를 합니다. 잘못을 뉘우쳤다면 이미 돌아가신 스승의 유지를 받들어 스승의 가르침대로 살아야합니다. 그것이 스승에 대한 보속이며 스승에 대한 사랑입니다. 그렇지만 유다는 잘못된 선택을 합니다.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포기하는 순간은 그 누구도 함께 할 수 없는 절대고독속에서 심연보다 더 깊은 절망과 자학의 시간이었을 겁니다. 유다도 그렇지만 제자의 배신을 체험한 것보다 제자의 죽음을 보는 예수님의 슬픔은 더 크지 않았을까요? 그러기에 유다의 자살은 어찌보면 무책임함의 표현입니다. 반면 회개는 희망의 또 다른 행동방식입니다. 자신의 잘못을 뉘우침과 함께 피해자에게 보속을 함으로써 자신과 타인을 빛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고백성사도 중요하지만 보속도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 예가 아닐까 합니다
마태오복음에서는 그가 목을 매달아 죽었다고 전하고 사도행전에서는 떨어저 죽어 내장이 모조리 쏟아졌다고 전합니다. 그가 어떤 방식으로 죽었는지는 중요하지않습니다. 단지 스승을 배신하고 죽음으로 몰아넣었으며 크리스도교에서는 죄로 치는 자살로 생을 끝마쳤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최악의 죄인으로 손꼽힙니다. 전승에서는 자살한 후에 악마에게 잡혀갔다고 전합니다. 때문에 다른 사도들이 다 성인으로 분류되어 축일을 가지는 데 비해 유다는 배신자라는 오명을 벗지 못합니다.
하지만 하느님앞에 죄없는 자가 어디있을까요? 은전 서른 닢이 아닌 은전 세 닢에도 예수님을 판 적이 없나요? 돈과 하느님중에서 돈을 선택한 적은 없나요? 진리와 비뚤어진 궤변중에 궤변을 선택한 적은 없나요?.....저는 유다에게 돌을 던질 수가 없음을 고백합니다
주님, 험한 파도속에서 아슬아슬하게 위험한 인생을 살다가 과격하고 불쌍하게 생을 마감한 당신의 제자.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아시고도 제자를 사랑하신 당신!
주님, 오늘은 제자에게 배신당한 당신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그리고 하늘 어딘가에 먼지가 되어 떠돌 유다의 육신의 흔적에도 꽃 한송이 뿌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