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6/2016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유익하도록 훈육하시어 우리가 당신의 거룩함에 동참할 수 있게 해 주십니다.
히브리 12:10
He does so for our benefit, in order that we may share his holiness
Hebrew 12:10
오늘부터는 마리아 막달레나에 관해 묵상해 보겠습니다
예수님의 삼년 공생활동안 열두 제자도 예수님과 함께 다녔지만 여자들도 예수님의 활동을 돕습니다. 악령과 병에 시달리다 낫게 된 몇몇 여자도 그들과 함께 있었는데, 일곱 마귀가 떨어져 나간 막달레나라고 하는 마리아,헤로데의 집사 쿠자스의 아내 요안나, 수산나였습니다. 그리고 다른 여자들도 많이 있었는데 그들은 자기들의 재산으로 예수님의 일행에게 시중을 들었습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님을 따르던 여인들중 가장 유명한 여인입니다. 그녀를 모티브로 한 그림과 책, 영화가 제작되어 비신자에게도 익숙한 이름인 마리아 막달레나는 어떤 인물일까요? 막달라또는 막달레나는 갈릴래아 호수의 서쪽에 위치한 어촌으로 어업의 중심지였습니다. 그녀는 과부이거나 결혼하지 않은 여자로 추정합니다. 그녀를 지칭할 때 누구의 아내라는 표현이 없고 이름대신 출신지명이 붙여졌기 때문입니다.
막달레나는 일곱 마귀에 사로잡혔던 여인입니다. 이 표현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는 의견이 분분하나 강력한 악의 세력에 사로잡혔다가 예수님을 만나 자유로워졌다는 것에는 일치하고 있다. 그 질병은 현대인의 관점에서 보자면 정신과와 신체질환에 해당하는 질병이라고 추축합니다. 그러나 예수님 시대의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질병들과 그 현상들을 대부분 악령에 관련된 것으로 간주했습니다. 그녀가 지녔던 질병은 치유불가능에 가까운 질병이었을 겁니다. 단순히 악령에 시달렸음 여자가 아닌 일곱 마귀에 시달렸다면 그녀의 병의 깊이와 심리상태가 얼마나 처참하고 고통스러웠는지 짐작이 갑니다. 몹쓸병에 걸린 여자, 무슨 죄가 많아 저런 지독한 병에 걸렸을까하는 사람들의 손가락질과 스스로 고개를 드는 자괴감때문에 살아 숨쉬는 것도 힘들었을 마리아는 어느날 치유를 받습니다. 아무도 고쳐지지 못한 병을 한 순간에 치유받고 자기 존재 자체가 구원받게 됩니다. 감사라는 말만으로는 그녀의 심정을 표현하기 힘듭니다. 인생역전을 경험하고 새 삶을 살게 된 그녀가 선택한 삶은 '따름'입니다. 그녀는 모든 것을 봉헌합니다. 재산뿐 아니라 자신의 삶 전체를 주님께 바칩니다. 악령에 시달렸던 과거의 삶에 무게보다 더한 무게로 성령으로 채워지는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어떤 마을에 큰불이 나서 모든 가옥을 태워 버릴 기세로 번지고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기적을 행하는 사람으로 알려진 수도자가 사는 움막으로 달려가 불길을 잡는 기적을 행해 주기를 애원했습니다. 하지만 수도자는 시큰둥할 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다가 평소에 엮어 두었던 갈대 바구니 여러 개를 손에 들고 나와 그것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며 말했습니다. "지금쯤 마을이 모두 타 없어졌을 거요. 각자 집으로 돌아가서 숯을 긁어 모으도록 하시오. 집에서 남은 것이라고는 그것밖에 없을 테니까." 사람들은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당신, 지금 우리를 놀리고 있는 거요?" "비극이란 거꾸로 뒤집힌 축복이랍니다." 수도자는 거침없이 말을 이어"이미 겨울이 목전에 닥쳐왔으니, 인근의 수많은 마을은 숯이 절실하게 필요할 거요. 그들에게 숯을 팔아서 돈을 넉넉히 벌어들이시오. 그 돈이면 훨씬 크고 멋진 집을 지을 수 있을것이오." 사람들은 돌아와 수도자가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마을에 돌아와 보니 정말로 집은 모두 타서 없어진 상태였고, 그들은 저마다 숯을 주워 모아서 인근 마을에 가져다 팔았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번 돈으로 한결 크고 멋진 집을 지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가끔 고통이 축복이라는 말을 합니다. 고통끝에 빛나는 신앙체험을 하기 때문입니다. 수도사의 말처럼 비극이란 거꾸로 뒤집힌 축복입니다. 마리아 막달레나가 겪었던 비극은 축복을 가기위한 통로였습니다. 이제 그녀는 예수님의 여제자로 거듭나게 되고 거룩함에 동참하게 됩니다
주님, 당신께서 채찍을 드시어 훈육하시면 아픕니다. 고통이 축복이라는 말도 때로는 고통에 고통을 더할 뿐입니다. 그래서 낮에는 웃고 떠들어도 밤에는 고통속에 눈물 흘립니다.
주님, 지금 흘리고 있는 눈물이 축복으로 가는 빛나는 고통의 눈물임을 알게해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