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318
2015년 3월 26일 목요일
하느님으로부터 받는 영광 (요한 8, 51-59)
“내가 나 자신을 영광스럽게 한다면 나의 영광은 아무것도 아니다. 나를 영광스럽게 하시는 분은 내 아버지시다. 너희가 ‘그분은 우리의 하느님이시다.’ 하고 말하는 바로 그분이시다.”(요한 8, 54)
오늘 아침 저에게 다가오시는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불완전 함에 대해서 생각해 보도록 초대하십니다. 하늘나라의 삶을 살던 인간이 세상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이 선택은 하느님의 뜻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선택에 의한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선택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도 주셨지만 인간은 자신의 자유의지로 선택합니다. 인간의 이성과 자유에 의한 선택이 얼마나 불완전한 것인가를 하느님을 떠남으로서 체험하게 됩니다.
창세기 13장을 보면, 아브람과 롯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브람과 롯은 부자였습니다. 서로가 너무 많은 재산을 갖고 있어서 함께 살 수가 없게 됩니다. 아브람은 무엇보다도 자신과 롯사이에 평화가 중요하다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아브람이 조카 롯을 불러서 “우리는 한 혈육이 아니냐? 너와 나 사이에, 그리고 내 목자들과 너의 목자들 사이에 싸움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온 땅이 네 앞에 펼쳐져 있지 않느냐? 내게서 갈라져 나가라. 네가 왼쪽으로 가면 나는 오른쪽으로 가고, 네가 오른쪽으로 가면 나는 왼쪽으로 가겠다.”(창세 13, 8-9) 하고 말합니다.
자기 자신을 영광스럽게 하기를 원하는 사람에게서는 도저히 기대할 수 없는 제안을 아브람은 롯에게 합니다. 자신과 롯사이에 참된 평화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먼저 희생해야 함을 아브람은 알고 있었습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영광을 얻는 삶의 전형입니다.
남 북간의 긴장관계 속에서 한 시도 전쟁의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살아가는 우리 국민들에게 아브람의 양보는 우릭 남북 관계를 어떻게 풀어가야 함을 보여줍니다. 그러하기 아브람의 양보는 우리에게 큰 도전으로 다가옵니다.
좀 더 나은 세상, 하느님이 주인이 되는 세상은 서로가 서로에게 양보함이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평화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 우리는 상당한 댓가를 지불해야 됩니다. 내 자신이 희생하지 않고서 타인에게 희생을 강요해서는 절대로 평화를, 화목한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영광 받기를 원하는 아브람은 크게 양보했습니다.
롯이 눈을 들어 요르단의 온 들판을 바라봅니다. 초아르에 이르기까지 어디나 물이 넉넉하여 마치 주님의 동산과 같고 이집트 땅과 같았습니다. 그때는 주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시기 전이었다고 성경은 전합니다. 롯은 요르단의 온 들판을 제 몫으로 선택하고 동쪽으로 옮겨 갔습니다.
소유의 삶에 눈이 먼 롯의 모습입니다. 반면에 아브람은 소유보다는 존재를 택합니다. 소유에는 한 발 물러서고 하느님께는 한 발 앞서가는 모습입니다.
스스로 영광스럽게 되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의 모습과 하느님으로부터 영광을 받기를 원하는 대조적인 두 사람의 모습입니다. 결국 스스로 자신을 영광스럽게 하는 롯의 선택의 결과는 자신이 선택한 땅에서 피신해 나와야 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두고온 재산에 대한 미련을 떨치지 못하고 뒤를 돌아본 부인은 뒤를 돌아봄으로서 소금기둥이 되고 맙니다. 스스로 영광스럽게 되겠다는 사람의 마지막입니다. 반면에 하느님으로부터 영광받기를 원하는 아브람은 하느님으로부터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너의 방패다. 너는 매우 큰 상을 받을 것이다.”하는 말씀을 듣게 됩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영광을 받게 됩니다. 큰 축복을 받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나 자신을 영광스럽게 한다면 나의 영광은 아무것도 아니다. 나를 영광스럽게 하시는 분은 내 아버지시다.”(요한 8, 54) 고 하시는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면서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