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309
2015년 3월 16일 월요일
믿음은 언제나 우리를 새롭게 한다(요한 4, 43-54).
"보라, 나 이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리라. 예전의 것들은 이제 기억되지도 않고, 마음에 떠오르지도 않으리라.(이사 65, 17)
"너희는 표징과 이적을 보지 않으면 믿지 않을 것이다.”(요한 4, 48)
“가거라.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 그 사람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이르신 말씀을 믿고 떠나갔다(요한 4, 50).
우리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과의 차이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다름을 깨닫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접근하시는 방법은 언제나 ‘긍정’으로 시작하십니다. 창세기에서 하느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하시는 “너는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어도 된다.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는 따 먹으면 안 된다. 그 열매를 따 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창세 2, 16-17) 하고 말씀하십니다. 이와는 반대로 뱀이 하와에게 접근해서 “하느님께서 ‘너희는 동산의 어떤 나무에서든지 열매를 따 먹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는데 정말이냐?”(창세 3, 1) 하고 묻든데서 이러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나에게 다가오시는 예수님께서는 ‘과거를 넘어서 미래를 보고 그 미래 안에서 하느님의 창조의 기쁨을 체험하고 살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부정의 어둠에서 긍정의 밝음으로 나아가라고 초대하십니다.
‘새롭다’는 것에 생각해 봅니다. 똑 같은 세상이고 물건인데 새롭게 느껴지는 때가 있습니다. 아마도 그것을 바라보는 내가 변한 것입니다. 마음과 생각이 바뀐 것입니다. 욕심이 가득차 있던 사람이 욕심을 버렸습니다. 욕심을 버리고 나서 세상을 바라봅니다. 여유가 있습니다. 주관적인 판단에서 이제는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경쟁의 대상으로 다가왔었던 이웃이 이제는 동반자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의 아팠던 기억들이 사라집니다. 불평과 불만이 가득했던 마음 속에 평화와 감사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새롭워졌습니다. 변화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살아야 할 이유를 모르고 살아갑니다. 자신이 살아야 할 이유을 알고 있는 사람은 어떠한 경우에도 살아갈 수 있다고 합니다. 사람이 불행한 이유는 바로 자신이 살아야 할 이유를 모른댜는 데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자신에게 ‘내가 사는 이유가 무엇인가?’ 에 대해서 질문을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을 세상적인 것에서 찾는가 아니면 하느님 안에서 찾느냐에 따라서 삶의 자세가 달라질 것입니다.
하느님은 믿고 싶은데 하느님이 존재한다는 증거를 보여달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에게는 하느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이 삶의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하느님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하느님이 존재한다는 증거가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자신의 존재자체가 하느님으로부터 기인한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이 바로 자신의 존재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조건없이 나를 사랑하는 부모님을 보면서 하느님을 봅니다. 하지만 하느님을 믿지 않은 사람은 부모님의 사랑을 보면서도 하느님에게로 나아가지를 못합니다. 무엇인가가 하느님께 나아가는 것을 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것을 막고 있는 내 삶의 우선순위를 바꾸면 언제나 존재해 왔던 세상이 나에게 새롭게 다가옵니다. 마찬가지로 하늘도 나에게 새롭게 다가옵니다. 그 순간 새 하늘과 새 땅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내 삶의 이유를 과거에서 찾는 사람은 현재의 삶의 이유를 모릅니다. 하지만 자신의 삶의 이유를 미래에서 찾는 사람은 그 이유를 압니다. 과거에는 인간이 있지만 미래에는 하느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이 나의 존재의 이유가 되는 그 순간 새하늘과 새땅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어떠한 표징도 이적도 필요가 없습니다. 표징이나 이적때문에 하느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믿기 때문에 표징이나 이적들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예전의 것들은 이제 기억되지도 않고, 마음에 떠오르지도 않으리라.”(이사 65, 17)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꼼꼼히 생각해 봅니다. 새롭다는 의미는 과거를 기억하지도 마음에 떠오르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새로움의 완성은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서 하느님께서 창조하시는 것을 대대로 기뻐하고 즐거워 하는 것(이사 65, 18)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오늘 하루도 하느님께서 펼쳐주시는 새로운 세상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하루를 살아가리라 다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