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제2주 강론
회개의 열매를 맺는 삶
마태 3,1-12
오늘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은 ‘하늘나라가 가까이 옸으니 회개하라’고 선포합니다 . 세례자 요한 하면 생각나는 말이 있습니다. 당신이 주연으로서 살아도 당신을 따르던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상황 속에서도 이분은 당신을 주연으로 내세우지 않으십니다. 주연이신 예수님을 위해서 자신을 참으로 낮추십니다. ‘자신은 작아지고 예수님은 크지셔야 하는 분’으로 그리고 ‘자신은 뒤에 오시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줄 자격조차 없다.’고 고백합니다.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자신을 낮추어서 주연을 더 크게 하는 방법과 자신은 그대로 두고서 주연을 크게 하는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우리는 위의 두 경우 중에서 한 가지 만을 하여도 참으로 대단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세례자 요한의 경우는 두 방법을 다 사용하십니다. 참 겸손의 표현입니다. 겸손을 살아가겼던 분이시게 ‘하늘나라’에 대해서 더 강하게 말씀하실 수 있나 봅니다.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은 ‘하늘나라가 가까이 와 있으니까 회개하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을 들여다 보면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회개가 필요하다는 의미로 들려옵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듭니다. ‘하늘나라와 회개’는 조건이 성취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즉 ‘회개’와 ‘하늘나라’는 함께 동시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는 바로 회개이고 하늘나라입니다. 그런데 이 회개를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한가 봅니다. 그냥 생각과 말로서의 회개가 아닌 삶의 변화가 수반된 회개인 것입니다. 즉 회개의 열매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회개의 열매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겸손’입니다.
많은 사두가이와 바리사이들이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러 올 때 세례자 요한이 그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아, 다가오는 진노를 피하라고 누가 너희에게 일러 주더냐?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 말합니다.
여기서 ‘독사의 자식들’이라는 말은 바리사이들이나 사두가이들이 위선적인 모습을 비난하는 말입니다. 일반적으로 뱀을 사탄의 상징으로 생각하기에 ‘사탄의 자식들’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여기서는 그런 말이 아니라 ‘위선자들’이라는 뜻으로 사용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의 의미는 위선자들아, 하느님의 심판을 피하기 위해서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그 열매는 일회성이 아닌 전 삶을 통해서 드러나는 삶의 모습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합당한 삶이 바로 ‘겸손’의 삶인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이 실천으로 보여주었던 그 겸손의 삶은 미래의 것이 아닌 현재의 것이어야 하고 일회성이 아닌 지속성을 가져야 함을 보여줍니다.
대림 2주를 맞으며 ‘회개의 삶’, ‘겸손의 삶’에 더욱 박차를 가하는 시간들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