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의 비유
루카 19장 11- 28
오늘의 복음 내용은 어떤 귀족이 왕권을 받아오기 위해서 먼 길을 떠나면서 자신의 종들에게 금화를 나누어 주면서 “자신이 먼길을 떠났다가 돌아 올때까지 벌이를 하라.’” 고 명령합니다. 그리고 왕으로서 돌아온 그는 자신의 명령을 어떻게 수행을 했는지 셈을 하고 그에 합당한 보상을 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오늘의 비유를 통해서 하느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더 필요하는 것을 그리고 하느님 나라가 오기 전에 예수님께서 먼저 떠나셔야 한다는 것, 그리고 예수님께서 떠나있는 동안 제자들은 시련을 겪는다는 것, 다시 오시는 예수님을 기다리는 동안 제자들은 맡겨진 임무를 성실하게 잘 수행해야 함을 이 비유를 통해서 가르치고 계십니다.
이 이야기는 마태오 복음 25장 14절에서 30절에 나오는 ‘탈렌트의 비유’와 많이 비슷하지만 또한 차이점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두 개의 비유를 따로 말씀하셨을 가능성도 있지만 많은 학자들은 원래의 하나의 이야기였을 것인데 전해지는 과정에서 달라졌을 수도 있고 마태오와 루카가 복음서를 기록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신학적인 생각에 따라서 달라졌을 수도 있다고 봅니다.
우리가 읽은 ‘미나의 비유’에서 나오는 왕의 이야기는 마태오 복음 2장 22절에 나오는 ‘아르켈라오스’의 이야기와 비슷합니다. 이스라엘 전체를 통치하던 헤로데 대왕이 기원전 4세기 경에 사망하자, 그의 아들 아르켈라오스가 아버지의 왕위를 계승하려고 로마 황제를 찾아갑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왕이나 영주들은 로마 황제의 임명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유대인들은 아르케라오스를 싫어했기 때문에 그의 왕위 계승을 막을려고 대표단을 로마에 파견했습니다. 로마의 황제는 절충안으로 아르켈라오스를 헤로데 대왕의 왕국에서 절반인 유다와 사마리아를 다스리는 지방 영주로 임명을 했습니다. 그는 로마에서 돌아온 후에 자기를 반대한 자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시 사람들이 잘 기억하고 있었던 그 일을 소재로 하여 당신의 승천과 재림의 대한 비유로 이용하시는 것 같습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모습을 보고 하느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가르침과 기적은 그들의 이러한 기대를 더욱 크게 했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기대하던 메시아의 모습은 로마의 지배하에 있던 이스라엘에 해방과 영광을 가져다 줄 정치적인 메시아였습니다. 이러한 그들의 환상을 깨뜨리기 위해서 이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첫 번째의 종과 두 번째의 종은 주인의 명령을 듣고 잘 실천합니다. 그래서 이 둘은 주인으로부터 고을을 다스릴 권한을 받습니다. 그러나 세 번째의 종은 주인이 준 금화를 보관하기만 했다가 주인에게 그대로 돌려 줍니다. 그러면서 이 종은 주인에게 주인이 냉혹한 사람이어서 두려웠다고 말합니다(루카 19, 21). 여기서 세 번째 종의 문제는 어디에 있을까요? 주인은 당신의 종들이 자신이 준 금화로 많은 벌이를 하는 것에 목적이 없었습니다. 오로지 이들의 성실성 만을 보고자 했고 성실하게 노력한 종들에게는 그러한 성실성에 합당한 책임을 부여했습니다. 하지만 세번 째의 종은 자신이 그 금화로 벌이를 했다가 손해를 보면 주인에게 벌을 받을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원금이라도 안전하게 보관을 해 두자’라는 생각으로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 세번째의 종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는 주인의 명령을 실천할 의향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의 생각의 이면에는 이러한 잘못이 있습니다. 하나는,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 잘못 판단한 것입니다. 둘째는, 주인의 명령의 의도를 잘못 이해한 것입니다. 세째는, 그렇더라도 주인을 위해서 일할 생각은 하지 않고 자기 자신만 생각한 것. 그리고 네째는,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등입니다.
주인은 세 번째 종의 능력이 없슴을 꾸짖지 않고 그의 ‘불성실’을 꾸짖습니다. 주인의 입장에서 성실함이란 종들이 자신의 명령에 순명하는 것을 말합니다. 첫 번째 종과 두 번째 종이 주인으로 부터 칭찬을 받은 것은 최선을 다해서 주인의 명령에 따르고자 노력을 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세 번째의 종이 설사 자신의 무능함으로 주인의 명령에 따라 노력을 했다가 원금을 잃어 버린다고 하더라도 주인은 그에게 책임을 묻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비유에서 주인은 예수님이고 종들은 우리와 같은 그리스도인들을 말할 것입니다. 주인이 먼 길을 떠났다고 하는 것은 예수님의 승천을 그리고 다시 돌아온 것은 예수님께서 다시오심 즉 재림을 의미합니다. 주인이 돌아와서 이 종들과 셈을 하는 것은 최후의 심판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서 당신의 종들 즉 우리들을 심판하실 때에는 우리가 쌓아온 업적을 보시는 것이 아리나 우리가 얼마나 당신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아왔느냐를 보신다는 것을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말하고자 합니다.
신앙인에게 있어서 성실함이란 참으로 중요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그대로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결과보다는 결과에 이르는 과정에서 성실함을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