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로서 생명을 얻는 삶
루카 21, 5-19.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교회의 전례 주년(週年)은 대림(待臨)시기와 함께 시작하고, 그리스도 왕 축일로 끝납니다. 다음 주일이 그리스도 왕 대축일입니다. 즉 전례력으로 한해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제2차 바티캍 공의회는 세상으로 열린 교회를 지향했습니다. 공의회는 교회안에서 평신도의 역할을 강조했습니다. 한국 주교회의는 이러한 공의회의 정신을 구현하고자 일년 중 전례력으로 연중 마지막 주일 즉 그리스도 왕 대축일 전 주일을 평신도 주일로 지내고 있습니다. 이 날 많은 본당에서는 평신도의 대표가 강론을 대신해서 자신의 신앙생활에 대한 체험담을 나누는 시간을 갖기도 합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겠지만 신앙이란 불확실한 것을 확실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우리의 과거의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합니다. 그리고 현재의 삶을 선물로 받아 들이게 합니다. 그리고 다가올 미래를 두려움 없이 대면하게 해 줍니다.
믿음이란 내 중심으로 살아가가는 삶이 아닌 하느님께 의탁하고 하느님 중심으로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전례력으로 한 해가 끝나는 시기가 다가오면 우리가 듣는 복음 말씀의 내용들이 바뀝니다. 세상의 종말에 대한 복음 말씀들을 듣게 됩니다. 이번 주일의 복음 말씀 역시 종말에 대한 말씀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종말이 오면 어떠한 일들이 일어나는 가에 대해서 말해줍니다.
제1독서에서 말라키 예언자는 이렇게 말해줍니다. “보라, 화덕처럼 불붙는 날이 온다. 거만한 자들과 악을 저지르는 자들은 모두 검불이 되리리.’ 세상의 끝이 오면 ‘거만하고 악을 저지르는 사람’ 들이 검불이 된답니다. 반면에 하느님의 이름을 경외하는 사람들에게는 의로움의 태양이 날개에 치유를 싣고 떠오른다고 합니다. 거만하고 악을 저지르는 사람의 미래와 하느님의 이름을 경외하는 사람들 사이의 대조적인 미래의 모습을 알려줍니다.
제 2독서에서 교회의 지도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떠한 삶을 구체적으로 살아가야 하는 지에 대해서 알려줍니다. “우리는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에 무질서하게 살지 않았고, 아무에게서도 양식을 거저 얻어먹지 않았으며, 오히려 여러분 가운데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수고와 고생을 하며 밤낮으로 일하였습니다.”
무질서하게 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어떠한 삶을 말하겠습니까? 바로 주님 안에서 주님 뜻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일을 한다고 거저 음식을 얻어먹지 않으려고 밤낮으로 열심히 일을 했다고 합니다. 이 삶은 바로 주님의 일을 하는 사람은 타인의 도움을 받음으로 해서 도움을 준 사람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말아야 함을 말합니다. 오로지 주님께만 속하고 모든 세상적인 관계 안에서 자유하는 사람이어야 함을 말합니다. 달리 표현하면 인간적인 관계 안에서 도움을 받음으로 해서 그 도움 때문에 예속되는 삶을 살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복음서를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해줍니다. “인내로서 생명을 얻어라.”
종말이 다가오면 자연재해가 발생하고 인간들 사이에 불신과 전쟁이 일어난답니다. 그리고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박해를 당하겠지만 주님 안에서 믿음을 갖고 살아야 한다고 합니다. 인내한다는 것이 바로 이러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거만하지 않고 악을 저지르지 않고 살아가는 삶, 주님 안에서 주님의 일을 밤낮으로 열심히 일하는 삶을 살아가는 삶, 바로 이 삶이 인내하는 삶이고 이 인내하는 삶을 통해서 영원한 생명의 삶을 살아갈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영원에서 한계를 창조하시고 다시금 영원으로 우리를 불러가시는 하느님의 초대에 응답하는 삶을 방해하는 구체적인 내외적인 요소들을 찾아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그리고 전례력으로 한 해를 보내면서 이 한해가 영원한 생명을 사는 준비의 한해로서 마무리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