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를 지는 삶이란 세상에서 세상을 넘어 사는 삶이다.
루카 14장 25-33
잔치에 초대를 받고도 응하지 않았던 이스라엘 백성으로 인하여 하느님의 구원사업은 이방인에게로 확장되어가고 지금도 그 잔치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을 이 세상 끝까지 전하는 일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잔치에 초대를 받고도 응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자신들 나름대로의 이유를 제시했지만 그 이유는 합당한 이유가 되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그만큼 세상적인 것이 우리와 더욱 가까이 있슴을 알 수 있습니다. 이미 세상적인 기득권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기득권을 포기란 것은 참으로 어려운 것임을 2000년 전 그 당시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하늘나라의 잔치에 참여한다는 것은 에수님을 따른다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가 없다.”
여기서 ‘누구든지’라는 말에는 예외가 없슴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오면서’라는 말은 예수님의 초대에 응답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일 따름입니다. 그 다음에 해야 할 일이 바로 26절과 27에서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언급하는 사람은 가족들을 말하지만 더 나아가면 모든 인간관계를 말한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리고 ‘자기 목숨’이라고 하는 것은 세속적인 삶을 뜻합니다. 9장 24절에서도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26절에서 ‘미워한다’라는 말은 그리스어로 ‘미세오’라는 말인데 이말은 원래 ‘덜 사랑한다. 혹은 버린다’의 뜻을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미워한다는 의미보다는 하느님을 자신들의 가족들과 세속적인 삶보다 더 사랑해야 한다’는 의미가 원문에 더 가까운 해석일 것입니다. 그리고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는 말은 사도나 제자가 되는 것보다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될 수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27절을 보면,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고 합니다. 여기서는 순교할 각오까지 해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33절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는 말은 바로 다시 한번 26절과 27절을 반복합니다.
오늘 복음 말씀은 다시 한번 ‘포기’에 대해서 묵상하게 합니다. 세상적인 관점에서의 ‘소유’에 집착하게 되면 한계가 있지만 영적인 관점에서의 ‘포기’는 무한을 생각하게 합니다. ‘소유’는 세상적인 개념이지만 ‘포기’는 영적인 개념인 것입니다. 소유는 세상과의 친교를 말하지만 포기는 하느님과의 친교를 말합니다. 하느님과의 친교를 위해서 우리는 세상적인 소유를 포기하는 십자가을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묵시록에 나오는 하늘나라의 옥좌 주변에 있는 셀 수 없는 사람들은 바로 이러한 포기를 살아간 사람들입니다. 바로 그 사람들 가운데 내가 있기 위해서 세상에서 세상을 넘는 삶을 살아가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