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
루카 13장 31-35
로마서 8장 35절에서 39절의 말씀은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고 우리 가 참으로 많이 인용하는 말입니다.
“35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험입니까? 칼입니까? 36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저희는 온종일 당신 때문에 살해되며 도살될 양처럼 여겨집니다.”37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사랑해 주신 분의 도움에 힘입어 이 모든 것을 이겨 내고도 남습니다.38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도, 권세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권능도, 39 저 높은 곳도, 저 깊은 곳도, 그 밖의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바오로는 자신이 겪은 고난을 구체적으로 35절에서 나열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겪은 이러한 고난들이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거부하지 않는 한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가 없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질문형식으로 나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오로 사도는 시편 44장 23절 “그러나 저희는 온종일 당신 때문에 살해되며 도살될 양처럼
여겨집니다.”을 인용합니다.
우리는 항상 이러한 위협에 노출되어 있고 실제로 겪고 있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위협이나 고난을 우리의 힘으로가
아닌 우리를 사랑해 주시는 분의 도움으로 이겨내고도 남는다는 것입니다. 즉 이말을 38절과 39절에서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으로부터 우리를 떼어 놓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내일도 그다음 날도 내길을 계속가야 한다.”하고 말씀하시면서 “예언자는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에서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날도’라는 말은 ‘짧은 제한된 시간을 의미하는 희브리어
표현 방식입니다. 32절의 ‘오늘과 내일은’이라는 말고
같은 뜻의 말입니다. 그리고 ‘내 길’이라는 말은 에수님께서 가셔야 하는 십자가를 향한 길을 말합니다. 이 길은 예루셀렘에서 끝나게 됩니다. 이 말은 32절에서의 말하는
‘내 일’과 동일합니다. 예수님께서 그 길을 계속가셔야 하는 것은 하느님의 계획이 완성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헤로데가 예수님을 갈릴래아에서 쫓아내지
않더라도 예수님은 갈릴래아를 떠나서 예루살렘으로 가신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헤로데가 두려워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계획을 완성하기 위해서 떠나신다는 것입니다.
루카복음사가는 자신의 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 자주
예수님을 예언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예언자로서 예루살렘에서 죽어야 한다는 말은 그것이
하느님의 계획이기 때문에 하느님의 뜻에 순명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내 길을 계속가야 한다.”는 이 말씀이
오늘하루의 삶의 화두로 다가옵니다. “내 길”은 어떠한 길일까
생각해 봅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나에게서 나의 길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나의
개인적인 욕심과 야망을 채우는 그러한 삶이 아닌 하느님의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졌듯이 그분의 사랑이 나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삶이 바로 나의
길임을 깨닫습니다.
이 길이 참으로 험한 고통과 시련의 길이기에 나혼자 만의 힘으로 걷기에는 두려움이 앞서기도 하고 자신이 없지만 하느님의 사랑안에서 걷기만 한다면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이 모든 두려움에서 이겨나갈 수 있는 힘을 주시기에 이 길을 자신있게 걸어가고자 합니다.
다시 한번 마음 속으로 외쳐봅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도, 권세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권능도, 저 높은 곳도, 저 깊은 곳도, 그 밖의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