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와 누룩의 비유
루카13장 18-21
겨자씨의 비유와 누룩의
비유를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본문 앞에있는 본문 10절에서
17절까지의 내용을 먼저 살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새 성경에는 ‘그러므로’라는 접속사를 생략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18절 이하의 두 비유말씀은 얼핏 보면 전 부분의 ‘등 굽은 여인을 고치시는 비유”와는 별 상관이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그리스어 본문이나
영어 번역을 보면 ‘그러므로’ 라는 말이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하늘나라에 대한 두 비유말씀이
"그러므로"라는 말로 전부분과 연결됨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 "그러므로"라는 말은 그 이후의 내용이 앞의 내용과 연관되어 있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따라서 앞에서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과
뒤에서 말씀하시는 두 비유를 함께 읽어보면 좀 더 두 본문을 잘 이해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18절에서 “하느님의 나라는 무엇과 같을까? 그것을 무엇에 비길까?" 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20절에서도 “하느님의
나라를 무엇에 비길까?" 하시며 [겨자씨의
비유]와 [누룩의 비유]를 각각 말씀하신 것입니다. 즉 하느님의 나라가 본문의 앞부분과 뒷부분을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펴보는 두 비유가
하느님나라 자체에 대한 비유들이라면, 앞부분에서 예수님께서 행하신 등굽은 여인의 병을 고쳐주시고 사탄을
쫓아내시는 일은 바로 하느님 나라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탄을 쫓아내시고 아무도 고치지 못하던 병자를 고치시며 사랑과 구원의 능력을 드러내신 일이 바로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와 있고 하느님의 나라를 완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일이 진행되고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탄과 병에 대해서 뿐 아니라 안식일에 대해서도 주인이심을 선언하셨고 우리를 위하시는 하느님의 사랑과 구원의 사역은 중단없이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이 하신 일을 반대하고 비난하는 자들의 위선을
폭로하시고 그들을 부끄럽게 하시며 하느님의 계명의 진정한 뜻과 참된 사랑을 가르치심으로써 사람들이 기뻐하고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신 일은 곧
하느님나라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느님나라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한
가지 일을 행하신 후 예수님께서는 그 하느님의 나라에 대해서 두 가지 비유의 말씀으로 설명하신 것입니다.
먼저 19절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 사역을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가져다가 자기 정원에 심었다. 그랬더니 자라서 나무가 되어 하늘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다.”에 비유하여 설명하셨습니다.
이 비유를 통해서 먼저
알 수 있는 의미는 바로 겨자씨가 나무로 성장해 가는 것에 있습니다. 씨로 있을때는 비록 작고 쓸모없이
보이지만 이 씨가 자라나 나무가 되면 씨였을 때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역할을 할 수 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겨자씨의 비유를 통해 말씀하시려는 것은 처음은 작으나 나중은 크게 되는 변화입니다. 비록 지금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하늘나라의 일은 그 당시 이스라엘을 지배하고 있던 로마제국의 힘과
예수님을 적대시하고 박해하는 유다교 지도층의 권력 앞에서 힘없고 보잘 것 없이 보일지 모르나 하늘나라는 갈수록 더 크게 드러날 것임을 제자들에게 확신시키시려 하신 것입니다.
[겨자씨의 비유]를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두번째의 의미는 바로 나무의 특징에 있습니다. 씨가 자라서 나무가 됩니다. 그러면 그 나무는 가지와 잎으로 그늘을
가지고 새들이 안전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나무가 갖는 이 기능을 가장 잘 표현해주는
말씀이 아마도 에제키엘 17:22-23의 말씀일 것입니다: "22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내가 손수 높은 향백나무의 꼭대기 순을 따서 심으리라. 가장 높은 가지들에서 연한 것을 하나 꺾어 내가 손수 높고 우뚝한 산 위에 심으리라. 23이스라엘의 드높은 산 위에 그것을 심어 놓으면 햇가지가 나고 열매를 맺으며 훌륭한 향백나무가 되리라. 온갖 새들이 그 아래 깃들이고 온갖 날짐승이 그 가지 그늘에 깃들이리라." 예수님께서는 일찌기 말씀하시기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하신 적이 있습니다. 이제 겨자씨의 비유를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행하시는 하느님나라 사역이 갈수록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영혼의
피난처와 안식처를 제공하며 보호와 안정과 기쁨을 주게 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겨자씨의 비유]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또 다른 의미는 바로 겉의
화려함에 보다는 역할의 중요성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화려하지 않은 외양에도 불구하고 그런 귀하고 중한 기능을 한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하느님나라는 그 겉모양을 보고 판단할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가지가 많고 잎이 무성하며 열매가 많이 달려서 많은 새들이 날아와 앉을 수 있고 시원하게 쉴 수 있으며 필요한
양식을 충분히 얻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지 실속 없이 겉모양만 화려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예수님을 따르며 겸손하게 그의 가르침대로 행하는 사람들 사이에 이루어지는 것이지 예루살렘 성전과
회당에서 권력을 쥐고 있거나 율법과 유대교의 전통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종교적 권위를 행사하는 자들이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21절에서는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를 위한 당신의 삶을 “그것은 누룩과 같다. 어떤 여자가 그것을 가져다가 밀가루 서 말 속에 집어넣었더니, 마침내
온통 부풀어 올랐다.” 고 하셨습니다. 이 [누룩 비유]의 요점은
반죽 속에 들어가서 보이지 않게 소리 없이 퍼지며 변화시키는 힘에 있습니다. 누룩은 한 번 반죽 속에
들어가면 반드시 퍼지게 되어 있습니다. 또 반죽 속에 들어간 누룩은 보이지도 않고 소리를 내지도 않지만
누룩이 들어간 반죽을 변화시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반죽 속에 들어간 누룩은 다시 꺼내서 없앨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선포하시고 가르치신 모든 진리의 말씀과 그가 행하신
모든 일들은 더 이상 이 세상으로부터 제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의 말씀과 행하신 사역은 계속해서
이 세상에 퍼지며 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막을 힘이나 방법은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하느님의 나라가 어떻게 완성되어 가는 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우리의 구체적인 변화된 삶이 바로 하늘나라가 있게하는 겨자씨와 누룩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