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예수님께서는 공생활을
시작하시면서 비록 당신은 죄가 없으시지만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세례을 받으시면서 우리와 하나되는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또한 당신은 요한복음에서 간음한 여자를 돌로쳐야 하는 가에 대한 질문을 받으실 때에도 너희들 가운데 죄가 없는
사람부터 돌로 쳐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무도 간음한 여자을 돌로 치지 못하고 나이 순으로 돌아갑니다. 당신 역시 그 여인을 단죄하지 않으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당신은
죄가 없으신 분이시기에 당연히 그 여인을 돌로 칠 수 있는 자격을 갖고 계시지만 여기에서도 당신은 그 여인에 대한 따뜻한 사랑으로 당신을 죄인과
같은 위치에 놓으십니다. 바로 예수님은 이런 분이십니다. 인간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크고 넓고 깊은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정결례에 대한 예수님의 시각도 항상 인간이
우선입니다. 안식일에 대한 당신의 생각 역시 인간이 우선입니다. 그러한
당신의 인간에 대한 극진한 사랑은 결국 당신의 생명마저도 내어 놓으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의 위선에 대해서 말씀을 하십니다. 위선이라 함은 겉은 깨끗하지만 속 마음은 깨끗하지 않음을
말합니다. 여기서는 속이 탐욕과 사악으로 가득차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속에 담간 것으로 자선을 베풀어라.” 이 말씀은 사기치고 도둑질 한 돈으로 이웃을 돕는 것이 아니라 정당하고
깨끗하게 번 돈으로 이웃사랑을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탐욕과 사악을 버리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한 걸은 더 나아가 참 사랑으로 마음을 채워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마태오 6장 21절은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위선자들이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듯이, 스스로 나팔을 불지 마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을 읽으면서 ‘가난한 과부의 헌금’(루카 21장 1-4) 이야기가 새롭게 다가옵니다. 어떤 빈곤한 과부가 렙톤(당시의 화폐 가운데 가장 가치가 작은 쇠돈) 두 닢을 헌금함에 넣는
것을 보시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서에서 얼마씩을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다 넣었기 때문이다.”
액수는 크지만 풍족한 가운데에서
헌금하는 것과 비록 액수는 작지만 자신의 생활비를 다 넣는 것의 차이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은 우리가 하늘나라에
보화를 쌓는 것을 방해합니다. 그냥 세상적인 댓가를 추구하게 합니다.
참으로 참기 어려운 유혹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유혹도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면 달라집니다. 하늘나라에 보화를 쌓은 연습을 하면 이겨나갈 수가 있습니다.
헌금을 하는 것, 미사에 참여하는 것을 그리고 공동체를 위해서 봉사하는 것. 등등을
주님께서 나에게 베풀어 주신 크신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한다면 아까울 것이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하나되는 삶의 실천 방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