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일흔 두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제자들이
어떠한 삶의 태도로 살아야 하는가를 알려주십니다.
두 사람씩 짝으로 파견하십니다. 소유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평화를 빌어주라고 말씀하십니다. 한 곳 머물러야 함을 말씀하십니다. 떠날 때는 과감한 단절을 요구하십니다.
두 사람씩 함께 파견한다는 것은 ‘관계성’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혼자서 사는 삶이 소유의 삶을 의미한다면 두
사람이 함께하는 삶은 사랑과 나눔의 삶을 살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은 죽고 상대를 배려하는 삶을
살아가야 함을 보여줍니다. 서로 개성이 다른 두 사람이 하나되는 모습을 이웃에게 보여주는 그 삶이 바로
하늘나라에서의 삶의 모습을 단편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는 사람들은 먼저 복음을 선포하기 전에 ‘평화’를 빌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평화란 무엇입니까? 하느님과 함께하는 사람들의 특징이 평화라면 악과 함께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두려움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담과 이브는 아무런 두려움이 없는 낙원에서의 삶을
살고 있었지만 사탄의 유혹에 빠진 다음에 당신의 창조주에 대한 두려움에 휩싸입니다. ‘평화’를 빌어준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사명이며 동시에 그리스도인이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 가를 보여줍니다.
제자들의 모습은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가장 최소한의
것을 지니고 다니는 사람들입니다. ‘소유의 삶’은 불안과
두려움을 동반하지만 ‘비움의 삶’은 평화를 동반합니다. 어떠한 불안의 방해도 받지 않습니다. ‘비움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자신에게 의존하는 삶이 아닌 하느님께 의존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곳을 떠날 때 ‘신발의 먼지를 털어내는 것’은 이제는 어떠한 미련도 갖지 않는다는 것을 말합니다.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새로운 미래로 나아감을 말합니다. ‘단호함과 결단’입니다. 바로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과거와의 절연을 통해서 새롭게 거듭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위한 기본자세입니다.
두 사람이 하나되는 것이 평화입니다. 평화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두 사람의 순교자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가꾸어나가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삶의 중심에 자리하시도록 나의 자리를 내어놓는 것입니다.
복음의 핵심 단어들을 생각해 봅니다. ‘두 사람씩의 파견은 조화와 하나됨’을 의미한다면 이 조화와 하나됨이 바로 ‘평화’의 조건이 될 것입니다. 일시적이고 긴장 속의 고요함이 아닌 영원하고
기쁨과 즐거움 속의 자유함을 의미할 것입니다.
오늘도 ‘비움’과 ‘거듭남’을 마음 속에 다짐하면서 하루를 주님께 바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