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와
라자로의 비유는 지상에서의 부자와 가난한 사람 그리고 저승에서의 부자와 가난한 사람 그리고 이승과 저승의 관계 등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마도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서 우리가 어떠한 삶의 자세를 갖고서 살아야 하는 가를 가르쳐주시기 원하셨던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의
“애야, 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슴을 기억하여라.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이 말이 어쩌면 현세를 살아가면서 어쩔 수 없이 어려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나 혹은 좋은 조건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어떠한 삶의 태도로
살아가야 하는 지를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동시에 예수님께서는 저승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이승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승과 저승사이에는 엄청나게 큰 구덩이가 있어서 어떠한 영향도 미칠 수 없슴을 알려줍니다.
저는 부자와
라자로에 관한 복음을 읽으면서 이 부자와 라자로는 두 인간의 모습이 아니라 나 자신의 또 다른 모습임을 깨닫게 됩니다.
지난 과거를 회상해 보면,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지 못하고 소유만을 추구하던 그 시절의 나의 모습은 너무나도 가난하고 힘든 시기였습니다. 부족함이
이미 주어진 시기였기에 그냥 자신의 그러한 처지를 운명이려니 하고 인정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너무나
당연하게 가난을 운명적으로 받아들였기에 부자가 된다는 것은 그냥 잠자는 시간에 이불 안에서만 상상해 볼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나의 노력으로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현실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부자의 관대함을 절실하게 기대해 보았던 시절이었습니다.
이제 부자의
모습으로 돌아 온 나는 불가능했던 부자의 관대함을 또 다른 나의 모습인 가난한 라자로에게 이제 가능한 부자의 관대함으로 돌려주고 싶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바로 지난 어려웠던 시절에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었던
것처럼 본인의 관대함이 인생을 포기하고 살아가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새로운 시작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은 바로 이 부자의 관대함을 지상의 삶에서 실천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는 것입니다.
복음에서
부자의 고통과 아픔 그리고 뼈에 사무치도록 반성하는 모습이 나의 모습이 아닌 것에 진심으로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동시에 이 땅에서의 마지막 순간까지 부자의 관대함을 더욱 성실하게 수행해 나갈 수 있는 지혜와 겸손과 사랑을
허락해 주시도록 주님께 청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