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오19장 3절- 6절
하느님께서 창세기 2장 5절에서 25절까지에서
땅과 하늘을 만드신 후에 땅을 일굴 사람이 없슴을 아시고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십니다. 그리고 코로
숨을 불어넣으시고 생명체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이 사람에게 에덴동산을 일구게 하십니다. 이 때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큰 약속을 하십니다. 즉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어도 된다. 하지만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는 따 먹으면 안된다. 그 열매를 따 먹는 날 ,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 다음에 하느님께서는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다고 생각하시며 그에게 협력자를 만들어 주십니다. 사람이 자고 있는 동안 갈빗대로 여자를 지으시고 그를 사람에게 데려오십니다.
사람에게 여자를 직접 데리고 오십니다. 우리는 이렇게 하느님께서 여자를 지으시고 남자에게
데려오시는 것을 기념하여 혼배성사에서 혹은 결혼식에서 신부의 아버지가 신부와 함께 입장하여 자신의 아들을 신랑에게 넘겨주는 형식을 취합니다. 참으로 의미가 깊은 전례입니다. 이 때 남자가 외칩니다. “이야말로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여자라 불리리라.” 하고 외칩니다. 이 말은 자신과 이 배우자와 이제 하나임을 외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 마태오 복음 19장 3-6절은 혼인의 불가 해소성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는 성사로서 맺어진 혼인은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것으로 인간의 힘으로는 풀 수가 없슴을 말하는 것입니다.
가톨릭 교회에서 혼배성사를
하기 전에 혼인을 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혼인의 중요성에 대한 교육과 참된 사랑의 삶에 대해서 강조하는 큰 이유는 바로 이러한 불가 해소성에
있습니다.
오늘 혼배성사를 받기를
원하는 두 분은 이 성사의 불가 해소성에 대해서 충분히 인식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태오 복음 18장 21절에서 35절을
보면 우리가 일상 생활을 통해서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필연적으로 범하게 되는 잘못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 가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주시는 가르침을
보게 됩니다.
나의 형제가 잘못을 하면
몇 번이나 용서를 해 주어야 하는 가에 대한 질문에 예수님께서 일곱번의 일흔 번이라도 용서를 해 주어야 한다고 말씀 하십니다. 여러분들께서도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일곱이라는 숫자는 성서에서 완전함을 의미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무한하게 용서해 주어야 함을 예수님께서 이러한 숫자를 인용하시면서 말씀하심을 잘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동시에 2번째 파트에서 예수님께서는 비유로서 인간의 가장 이기적인 부분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여 주십니다. 자신은 타인으로부터 큰 용서를 받기를 원하면서도 타인에게는 그와 반대로 행하는 우리 인간의 이기적인 모습을
잘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랑을 공식적으로 확인하는
두 분께서는 오늘의 복음말씀과 마태오 복음 18장의 말씀을 가슴 깊이 간직하면서 평생을 살아 가셔야
합니다. 여러분의 사랑이 영원한 열매를 맺기 위해서 이러한 예수님의 가르치심는 여러분의 삶의 지표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저는 결혼 전
연애하던 시절과 결혼 후의 생활을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혼 전,
즉 연애하던 시절에는 상대의 모습과 행동 하나 하나가 아름답게 보이고, 동시에 서로가 불확실한
것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기 때문에 자신의 허점이나 약점을 가능하면 노출시키지 않을려고 노력합니다, 즉 상대에게 많은 점수를 얻기 위해서 항상 깨어 있으려고 노력하고 동시에 상대의 어떠한 잘못도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시기를 자신에게는 철처하게 엄격하면서도 상대에게는 철저하게 관대 하려고
서로가 노력하는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결혼이라는 제도의 틀 속에 들어가고 난 뒤부터는 그러한
우리의 마음 자세는 급속도로 그
반대의 길로 향하기 시작 합니다. 바로 오늘 복음에서의 말씀과 같이 자신은 상대의 사소한 잘못도 용서하지
않으면서 자신은 상대로부터 가장 큰 용서를 바라는 이기적인 삶의 자세로 바뀌는 것입니다. 즉 이러한
시기를 자신에게는 철저하게 관대하면서 상대에게는 철저하게 엄격해지기 시작하는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오늘 하느님 앞에서
자신들의 사랑을 고백하고 하나가 되기를 원하는 두 분에게 다음과 같은 부탁을 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항구한 사랑을 실천 하십시오! 이러한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서로를
존경하는 마음이 필수적 입니다. 이는 자신 위주의 삶을 살아 가는 것이 아니라 항상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판단하는 삶을 사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혼전에 아름답게 보이던 모든 것이 결혼 후에도 항상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서는 서로를 위한 순교자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하나의 씨가 열매를 맺기 위해서
땅에 떨어져 썩어야 하듯이 서로를 항구하게 사랑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자신을 죽이고 상대를 먼저 생각하는 큰 희생이 필요한 것입니다.
둘째로,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고 서로의 장점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도와 주는 것이 필요 합니다. 나의 배우자가 나보다 더 나은 재주를 갖고 있음을 발견 한다면 그러한 것에서 열등감을 갖기 보다는 그의 탈렌트를
가능하면 잘 발전시키고 실생활에서 잘 활용할 수 있도록 도와 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나의 배우자가
어떠한 약점을 갖고 있다면 그러한 약점을 장점으로 바꾸어 주기 위해서 애정 어린 노력을 해 주시기를 부탁 드립니다.
세째로, 서로의 부모님을 존경하고 사랑하시기를 진심으로 부탁 드립니다. 현대와
같이 부모님에 대한 사랑과 존경심이 희박한, 개인 중심의 삶을 살아 가는 사회에서 가장 아쉽고 그리워
지는 것은 부모님께 대한 효도의 삶인 것입니다. 부모님께서 돌아가시고 난 이후에 슬퍼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 분들께서 생존해 계실 때 진정으로 그 분들께서 원하시는 것을 해드리는 것이 더욱 중요한
것입니다. 서로가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나의 배우자의 부모님
역시 친부모님처럼 존경하고 사랑하셔야 할 것입니다.
화려한 장례식 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 분들이 우리의 사람일 때 잘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품에 안긴 사람은 하느님의 사람입니다. 그런 분들에게는 화려함이 별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한
화려함은 장례를 치르는 자식들이 자신의 불효에
대한 위안 즉, 자신의 심리적인 보상 욕구일 따름인 것입니다. 진정으로
부모님께 효도하고 그분들을 하느님의 품에 편안하게 보내 드리는 것이 정말 중요함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사랑하는 젊은
남녀들이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하나의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를 원하는 것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미래에 이들이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
주겠다고 다짐하기 위해서 이 자리에 모여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자리가 단지
축하와 그들이 어려울 때 힘이 되어 주겠다는 다짐하는 그러한 단계에 머물러 있기에는 조금은 부족하다고 생각 합니다. 그러한 단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오늘 이 혼배 성사가 이미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자신들의 결혼 생활을 냉정하게 되돌아 보고 반성하고
쇄신하는 자리가 그리고 혼인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는 진정한 사랑이란 어떠한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그렇게 실천하려고 다짐하는 자리가 될 때
더욱 완벽한 의미가 있음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다시 한번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가르침으로 돌아가서 인간 관계의 모든 문제의 근본은 용서하지 못한 데서, 자신의 것만을 추구한다는
데서 유래함을 가슴 깊이 명심해야 겠습니다. 이 말씀이 우리의 일상적인 삶 안에서 생명력을 갖게 하기
위해서는 진실로 그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새로운 가정을 꾸리는 여러분이
이러한 삶을 살아 가는데 도움을 주시도록 주님께 다 함께 기도를 드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