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떠한 탐욕에도 빠지지 말도록 주의를 환기시켜 주십니다. 이러한 그 분의 말씀은 가난한 사람들이 비인간적인 생활 환경에 만족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고
동시에 소시민으로서의 삶에 만족하라는 것도 아닙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탐욕이란 우리가 필요한
것 이상의 것을 이웃을 고려함이 없이 취득하기를 원하거나 추구하는 마음의 자세를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에리히 프롬의 말을 빌어 온다면 “소유로서의 삶”은 탐욕에 길들여진 삶일 것이고 이는 바로 자기를 위해서는 재산을 모으면서 하느님께는 인색한 삶을 살아가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존재로서의 삶”은 바로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바와 같이 “그의 재산이 생명을 보장해 주지 못한다”는
사실과 동시에 “자신의 영혼이 언제 자신으로부터 떠나 갈 것인가를 모르기” 때문에 항상 이를 염두에 두고서 준비하며 살아가는 삶을 말합니다.
오늘 우리의 가장 큰 명절 중의 하나인 추석을 맞이하면서 이러한 주님의 말씀을 토대로 우리의 삶을 반성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매년 추석을 맞을 때 마다 우리에게 비옥한 땅을 맡겨주시고 풍성한 수확을 허락해 주신 하느님의 무한한 은혜에
감사하며, 먼저 가신 조상들의 영혼을 기억하며 그 분들께 동시에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그 분들을 위해서
기도를 드립니다.
진정으로 타인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기 위해서는 우리의 현재의 처지를 상대적으로 나은 사람과 비교하여서는 안됩니다.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나보다 더 불행하게 살아 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할 때 만이 진정으로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마음의 자세를 갖기 위해서 참으로 겸손한 마음이 필요합니다.
상향 비교가 얼마나 많은 사회적인 문제를 야기시키는지는 또 다른 보충 설명을 드릴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나의 이웃보다는 좀 더 나은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경쟁의 논리로부터 인간의 모든 불행이 시작 된다는 것은 성서를
인용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경쟁의 논리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인간의 탐욕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경쟁의
논리의 노예가 될 때 우리는 가장 비그리스도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자식들이 혹은 나의 남편이, 나의
부인이 그들보다는 모든 면에서 좀 더 나은 친구를 사귀기를 원합니다. 저 역시 그러한 가르침을 받으면서
정말 옳은 가르침이라고 인정을 하고 살아 왔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러한 삶의 논리가 얼마나 비인간적이고
비그리스도적이고 이기적인 삶의 논리인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만약에,
모든 사람이 경쟁의 논리의 노예가 되어 항상 자신보다 더 나은 사람과 사귀기를 원한다면 어떻게 나보다 나은 사람이 나의 친구가 될
수가 있겠습니까? 그 사람도 나와 같은 생각을 갖고 살아 가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비참한 사람의 참 보호자가 되신 예수님의 삶을 살아가겠다고 다짐한 그리스도 인의 공동체가 어쩌면 이러한
인간관계를 더욱더 강하면서도 열정적으로 추구하고 살아 오지는 않았는지 한번 철저하게 반성을 해보아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삶의 논리가 공동체를 분열시키고 많은 주변의 힘없고 불행하게 살아가는 나의 이웃에게 위화감을 주었는지를 반성해 보아야 합니다.
나보다 나은 사람은 나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지만 나보다 모자라는 사람은 나의 따뜻한 사랑의 손길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것을 명심하고 그러한 사람의 참 후원자가 되려고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다짐은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현재의 자신의 처지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이를 감사하게 생각 할 때 만이 생길 수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맞고 있는 추석이 우리에게 새로운 삶 즉 진정으로 감사하며 살아가야 함을 깨우쳐 주는 좋은 기회가
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는 너희의 재산이 너희의 생명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말씀의 참된 의미를 깊이 묵상해 보아야 합니다. 하늘 나라에 영원히 변치 않을 재물을 쌓는다는
것은 바로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현재의 나가 있을 수 있도록 도와 주신 부모님께 감사하고 나보다 못한 사람의 참 후원자가 될 때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