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감당해야 하는 비용
루카 14장 25-33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과 함께 길을 가고 있던 많은 군중에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당신께 오기를 원하는 사람은 첫째는,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는 목숨까지 미워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본문에서
사용하고 있는 ‘미세오’라는 그리스어는 원래 ‘덜 사랑한다’라는 의미로 쓰입니다.
그래서 마태오 복음 10장 37절에서는 ‘덜 사랑한다.’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희브리어에서는 비교급의 표현이 없기에 그냥 덜 사랑한다는 말 대신에 ‘미워한다’라고 번역을 한 것 같습니다. 어떠한 의미에서 쓰이던 원래의 의미를
왜곡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자신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따라야 한답니다. 자신의 십자가의 대표적인 것이 부모와 가족을
예수님보다 덜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기의 소유를 다 버려야 한답니다.
창세기 22장 1절에서 19절을
보면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십니다. 자신의 모든 것이나 다름없는 아들 이사악을 번제물로 바치라는
명령을 듣고 이를 실천하는 아브라함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브라함이 백살에 보았던 아들 이사악을 번제물로 바쳐야 한다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그는 말없이 이를 실천합니다. 성경은 아브라함이 하느님으로부터 아들을 번제물로 바쳐야 한다는 말씀을 들었을 때 어떠한 마음이었는지에 대해서
한 마디의 설명도 없습니다. 그는 하느님의 말씀대로 실천합니다. 이러한
그의 큰 믿음을 보시고 하느님께서는 따로 제물을 마련하시고 이사악에게 손끝하나 대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이러한
믿음과 순명으로 아브라함은 하느님으로부터
큰 복을 받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하여 세상의 모든 민족들이 복을 받게 된다는
약속을 받습니다. 바로 지금 우리가 아브라함의 믿음과 순명의 혜택을 받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고 따라야 하는
십자가는, 즉 우리가 버려야 하는 우리의 소유물에는 어떠한 것이 있을까요 아마도 크게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먼저, 옛사람이 죽는 것입니다. 즉 내 중심으로 살아왔던
자신을 죽여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5장 24절에서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 예수님께 속한 이들은 자기 육을 그 욕정과 욕망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하고 말합니다. 둘째로 우리가 짊어지고 가야하는 십자가는 세상 으로부터 예수님
때문에 받는 박해를 감수해야 합니다. 우리의 주변에는 신앙때문에 가족들로부터 혹은 친구들이나
직장 사회로부터 소외을 당하거나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어려운 일들이
있을 때마다 하늘나라에 보화를 쌓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좌절하지 않고 꾸준히 살아가는 것입니다.
세째는 세상적인 즐거움이나
명예나 권력이나 재물의 유혹과 싸워 이기는 것입니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을 보면서 우리가 하느님께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사탄이 약간의 성공을 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성공은 자신을 잃게하는 독약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가축들에게 먹이를 주는 이유는 잡아먹기 위해서입니다
사탄 역시 주님 안에서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유혹을 줍니다. 그
유혹이 빼앗아 간다는 것입니다. 사탄이 세상을 화려하게 만든 이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우리를 쓰러뜨리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 우리가 져야하는 십자가를 살펴보았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십자가를
대면하는 방법에 있어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오늘 복음은 이를 위해서 지혜가 필요함을 강조합니다. 공사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공사비를 산출해서 내가 부담할 수 있는 가를 살펴 보는 일, 전쟁을 하기 전에 먼저 나의 능력으로 이길 가능성이 있는가를 살펴보고 대안을 찾아보는 일들입니다.
결국 이러한 모든 일은 나의 소유를 포기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함을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