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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6-12 15:21
   하느님의 나라를 체험하는 삶 (마르 4, 2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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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kchung6767
    조회 :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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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 11주일 미사

2015년 6월 14일 일요일

하느님의 나라를 체험하는 삶


“하느님의 나라는 이와 같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려 놓으면,  밤에 자고 낮에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씨는 싹이 터서 자라는데, 그 사람은 어떻게 그리되는지 모른다.”(마르 4, 26-27)


최근 들어서 기억력이 참으로 많이 쇠퇴했구나 하는 것을 깨닫습니다. 세심함이 필요하지만  그러한 면에서 예전보다는 세심함의 부족으로 실수를 합니다. 나이 들어간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여전히 젊다고 생각하고 살고 있는데 생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나이 들어감을 느끼면서도 실망을 하거나 슬퍼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하느님께 의탁하는 마음은 더욱 강해지는 것 같습니다. 


어느 순간에 상상하지도 못했던 지금의 나가 되어 있습니다. 어릴 때는 빨리 나이가 들어서 어른이 되었으면 했었는데 이제는 시간이 너무 빨리 감을 탓하는 것입니다. 지나가는 시간을 잡을 수가 없슴을 우리는 잘 압니다. 바닷 물에 빠지면 그냥 내 자신을 바닷 물에 내 맡겨야지 살려고 발버둥을 치면 오히려 물에 가라 앉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시간은 가고 있는데 이 가는 시간을 잡기 위해서 바둥대는 것은 바다에서 살겠다고 발버둥치는 것과 다름이 없을 것입니다. 시간의 바다 위에 내 자신을 맡기는 것입니다. 


언젠가 이런 생각을 해 본적이 있습니다. 있는 길을 갈 것인가 아니면 없는 길을 만들어서 갈 것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요즈음 등산을 하는 사람들은 무조건 빨리 높이 올라가는 등정주의를 택하지 않고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는 등로주의를 좋아한다고 합니다. 어쩌면 우리의 삶도 이제는 일렬 종대로 가는 획일적인 삶이 아닌 자신의 길을 창조적으로 살아가는 삶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이와 같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려 놓으면,  밤에 자고 낮에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씨는 싹이 터서 자라는데, 그 사람은 어떻게 그리되는지 모른다.”(마르 4, 26-27)고 합니다.  이 말의 의미는 그냥 저절로 그렇게 된다는 의미는 아닐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나는 심고 아폴로는 물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자라게 하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그러니 심는 이나 물을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오로지 자라게 하시는 하느님만이 중요합니다.”(1코린 3, 6-7) 하는 말씀을 통해서 위의 말씀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눈에는 저절도 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보이지 않는 손길의 작용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보이지 않는 손길이 우리에게 보이게 되는 것은 바로 우리의 노력이 합해질 때에만 가능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또 하느님의 나라에 대해서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가져다가 자기 정원에 심었다. 그랬더니 자라서 나무가 되어 하늘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다.”(마르 4, 31-32) 하고  비유로 설명하셨습니다.

 

이 비유를 통해서 먼저 알 수 있는 의미는 바로 겨자씨가 나무로 성장해 가는 것에 있습니다. 씨로 있을때는 비록 작고 쓸모없이 보이지만 이 씨가 자라나 나무가 되면 씨였을 때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역할을 할 수 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겨자씨의 비유를 통해 말씀하시려는 것은 처음은 작으나 나중은 크게 되는 변화입니다. 비록 지금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하늘나라의 일은  그 당시 이스라엘을 지배하고 있던 로마제국의 힘과 예수님을 적대시하고 박해하는 유다교 지도층의 권력 앞에서 힘없고 보잘 것 없이 보일지 모르나 하늘나라는  갈수록 더 크게 드러날 것임을 제자들에게 확신시키시려 하신 것입니다.

 

이 비유를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두번째의 의미는 바로 나무의 특징에 있습니다. 씨가 자라서 나무가 됩니다. 그러면 그 나무는 가지와 잎으로  그늘을 가지고 새들이 안전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나무가 갖는 이 기능을 가장 잘 표현해주는 말씀이 아마도 에제키엘 17:22-23의 말씀일 것입니다: "22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내가 손수 높은 향백나무의 꼭대기 순을 따서 심으리라. 가장 높은 가지들에서 연한 것을 하나 꺾어 내가 손수 높고 우뚝한 산 위에 심으리라. 23이스라엘의 드높은 산 위에 그것을 심어 놓으면 햇가지가 나고 열매를 맺으며 훌륭한 향백나무가 되리라. 온갖 새들이 그 아래 깃들이고 온갖 날짐승이 그 가지 그늘에 깃들이리라." 예수님께서는 일찌기 말씀하시기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하신 적이 있습니다. 이제 겨자씨의 비유를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행하시는 하느님나라 사역이 갈수록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영혼의 피난처와 안식처를 제공하며 보호와 안정과 기쁨을 주게 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비유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또 다른 의미는 바로  겉의 화려함에 보다는 역할의 중요성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화려하지 않은 외양에도 불구하고 그런 귀하고 중한 기능을 한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하느님나라는 그 겉모양을 보고 판단할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가지가 많고 잎이 무성하며 열매가 많이 달려서 많은 새들이 날아와 앉을 수 있고 시원하게 쉴 수 있으며 필요한 양식을 충분히 얻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지 실속 없이 겉모양만 화려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예수님을 따르며 겸손하게 그의 가르침대로 행하는 사람들 사이에 이루어지는 것이지 예루살렘 성전과 회당에서 권력을 쥐고 있거나 율법과 유대교의 전통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종교적 권위를 행사하는 자들이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이 세상에는 저절로 되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과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희생과 하느님의 사랑의 손길이 어우르져서 이루어진 것들임을 깨닫습니다. 동시에 하늘나라는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용과 기능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것입니다.  이러한 깨달음이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실천되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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