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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8-29 12:53
   연중 제22주간 강론 - 자신의 십자가를 지는 삶 (마태 16,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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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kchung6767
    조회 :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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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2주간 강론 - 자신의 십자가를 지는 삶 

마태 16, 21-27

2014년 8월 31일 일요일

여러분의 몸을 하느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드려야 하는 합당한 예배입니다.(로마 12, 1).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 나!”(마태 16, 23)

예수님을 바랍니다. 당신의 일을 방해하는 베드로을 야단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놀랍습니다. 바로 전부분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누구라고 생각하는 지에 대해서 물으실 대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 16, 16)하고 대답을 합니다. 

우리는 베드로의 이러한 고백이 베드로 혼자 만의 고백이 아니고 사도단 전부의 신앙고백일 뿐만 아니라  나아가 교회 전체의 신앙고백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여기서 베드로의 고백을 다시 한번 잘 살펴보면, 베드로는 ‘살아 계신 하느님’이라고 표현합니다. 이는 우리의 하느님은 생명이 없는 돌들이나 우상과 같은 분이 아니시고 살아계시고 우리에게 생명을 허락하시는 분이시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아드님’이라는 표현은 필리피서 2장 6에서 8절까지의 말씀에서 처럼 하느님과 똑 같은 신성을 가지신 분이심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라는 말은 ‘구세주, 즉 메시아’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베드로의 이 고백은 ‘예수님께서는 참으로 메시아이시고 하느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 고백을 두고서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고백은 인간적인 지성이나 지식으로는 알 수가 없는 것, 즉 하느님의 계시에 의해서만 알 수 있는 것인데 이 계시를 받은 베드로는 행복하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하느님의 계시를 받은 베드로는 행복하다고 하셨던 분께서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하고 질책을 하시는 것입니다.

이 질책의 이유을 살펴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일이 있은 다음에 당신의 수난과 부활에 대해서 예고를 하십니다. 21절의 말씀입니다. 

“그때부터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반드시 예루살렘에 가시어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흗날에 되살아나셔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밝히기 시작하셨다.”

여기서 ‘그때부터 … 시작하셨다.”라고 하시는 말씀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메시아로 고백한 때부터’ 예수님께서 당신의 수난과 부활에 대해서 밝히기 시작하셨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반드시’라는 말에 주목을 해야 합니다. 이 말은 당신이 하느님의 뜻에 순명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언급하는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은 당시의 최고의회의 구성원들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고난은 이들 구성원들에 의한 개별적인 박해가 아닌 공적인 기구에 의한 공적인 박해를 말합니다. 국가기관에 의한 조직적인 박해를 받았슴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에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박해를 받으시고 죽으신다는 말에만 관심을 둡니다. 부활에 대한 언급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만약에 부활에 관심이 있었다면 그렇게 까지 공격적으로 반응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우리가 관심이 있는 것만 듣고 봅니다. 그래서 듣고도 듣지 못하고 보고도 보지 못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 ‘사탄’에 대한 정의을 알 수가 있습니다. 바로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 존재’를 사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에게도 이 사탄적인 요소가 많이 있슴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누구든지’라는 표현을 사용하시면서 어떠한 예외도 없슴을 강조하십니다. '자신을 버리는 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일에 방해가 되는 '자아'를 버리는 것입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는 삶(갈라 2,20)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지고 따른다.”는 것은 세상적인 모욕과 고통과 시련을 참고 견디는 삶을 살겠다고 하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살아가야 함을 강조합니다. 

내 자신의 몸을 하느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는 삶이 어떠한 삶인지를 깨닫습니다. 내 십자가를 지고 살아가는 삶입니다. 바로 매 순간 순간을 예수님을 바라보는 삶을 살아가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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