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 대축일 강론
성령을 받아라
요한 20,19-24
2014년 6월 7일
오늘은 2000년 전 교회가
처음 시작했던 성령강림 대축일입니다. 구약 4,000년 동안은 성부께서 정면에 나서시고 예수님과 성령은 뒤에서 활동하셨습니다. 신약 33년 동안에는 성부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전면에서 활동하시고 성부와 성령께서는 예수님 뒤에서 활동하셨슴을 압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당신께서 보내주신 ‘보호자’인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와서 우리와 함께하시고 성부와 성자께서는 배후에서 활동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구약의 시대와 신약의 시대
그리고 지금의 시대를 성부의 시대, 성자의 시대, 그리고
지금을 교회의 시대 혹은 성령의 시대라고 합니다.
오늘은 교회의 생일입니다. 오순절에 성령강림과 함께 교회의 시대가 시작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제자들은 당신의 ‘보호자’를 보내실 때까지 다락방에
모여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주간 첫날 저녁에 사도들을 포함하여 약
120여명의 그리스도인들이 모여서 기도를 하고 있는 중에 성령께서 이들에게 강한바람과 함께 불꽃모양으로 내려오십니다.
오늘 복음 말씀은 주간
첫날 저녁에 있었던 일을 알려줍니다. 이 때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서 문을 잠가 놓고 있었습니다. 이들이 왜 유다인들을 두려워했는지를 우리는 잘압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처형했던 유다인들이 그를 추종했던 자신들에게 어떠한 위해를 가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문을
잠가 놓았다.’라는 것은 참으로 두려워하고 있었다는 것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이렇게 문을 잠가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셨음을 강조하기 위함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다고
하더라도 당시의 상황을 고려하면 당연히 두렵고 불안했을 것입니다. 이들에게 예수님께서 오십니다. 그들 중간에 서셔서 말씀하시기를 “평화가 너희와 함께!”하십니다. 두려움과 불안의 반대어인 ‘평화’를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평화’란 세상적인 개념으로서의 평화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불안은
세상적인 것을 추구함에서 오는 두려움이고 불안이지만 주님께서 주시는 이‘평화’는 세상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분께서 주시는 평화입니다. 어떠한 세상적인
것도, 재물이나 권력도 명예도 침범할 수 없는 ‘평화’인 것입니다. 쥐는 것에서 오는 ‘평화’가 아닌 내어놓음에서 오는 ‘평화’인
것입니다. 이 ‘평화’는 파견과 함께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평화’를 주시면서 아버지께서 당신을 보내신 것처럼 당신의
제자들을 파견하십니다. 동시에 이들에게 숨을 불어 넣으며 ‘성령을
받아라.’하고 말씀하십니다. 숨은 생명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슴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또한 이 ‘숨’이 바로 ‘성령’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 순간 우리는 새롭게 거듭남을 봅니다.
예수님께서 니코데모와 의 대화에서 ‘거듭남 ’에
대해서 강조를 하셨는데 이 ‘거듭남’이 바로 위로부터 태어남을
말합니다. 즉 이말은 성령으로 새롭게 태어남을 말합니다.
이렇게 당신의 제자들은
세상적인 불안과 두려움에서 참 평화를 누리는 존재로 정적인 존재에서 동적인 존재로 변화된 것입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들은 복음을 자신들만 간직하고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생명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삶의 현장으로
달려갑니다. 박해를 축복삼아 이 세상으로 나아갑니다. 이들의
변화된 모습은 바로 주님 안에서 언제나 기뻐하고 끊임없이 기도하고 모든 일에 감사하는데서 찾을 수가 있습니다. .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테살 1서 5장 16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