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 6주간 강론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서로 사랑하여라 2014 년 5월 25일 일요일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요한 일 4, 7-8)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돌아가시기 전날 밤,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들과 함께 자그마한 장소에 모여 최후의 만찬을 가지십니다. 예수님께서 저녁 식사를 하시던 도중에 두 가지 위대한 일을 하셨슴을 우리는 압니다. 하나는, 우리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것이고(요한 13장) 또 하나는 예수님께서 성찬례를 제정하시는 것입니다.(마태26, 26-27)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마지막 저녁식사를 하시면서 당신께서 살아오신 삶의 여정을 함축적으로 보여주십니다. 당신께서 모범으로 살아오셨던 섬김의 삶을 그리고 우리를 구원하기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내어놓은 삶을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이 섬김과 내어놓음의 정신에는 바로 ‘사랑’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새로운 삶의 지침을 주십니다. 새로운 계명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 34)하고 말씀하십니다. 마태오 복음 22장에 율법교사 한 사람이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서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질문하고 예수님께서 답변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율법 교사 한 사람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물었다.“스승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 ”고 말씀하셨습니다.”(마태 22, 35-40) 예수님의 이 말씀은 구약에서 인용하신 것입니다. 구약의 계명은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신명 6, 5)는 말씀처럼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레위 19, 8)는 말씀처럼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새 계명’을 준다고 말씀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구약의 계명과 새 계명에는 아래와 같은 차이가 있습니다. 이러한 차이에서 이유를 찾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첫째는 사랑의 대상입니다. 구약의 사랑이 하느님께 선택받은 사람들끼리라는 배타적인 사랑의 개념을 갖고 있다면 예수님께서 주신 새 계명은 사랑의 대상을 구분하지 않는 열려진 개념입니다. 인간적인 모든 장벽과 차별을 넘어서는 보편적인 사랑인 것입니다. 둘째는 사랑의 한계입니다. 구약의 사랑이 용서와 더불어 동태복수법이라는 한계가 있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사랑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즉, 베드로가 예수님께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마태 18, 21-22) 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용서에는 한계가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셋째는 사랑의 방법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심으로써, 하느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증명해 주셨습니다. ”(로마서 5, 5)는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잘 알 수가 있습니다. 구약의 사랑의 방법이 율법과 명령에 따른 것이라면 예수님의 사랑은 십자가를 통한 사랑인 것입니다. 십자가의 사랑은 조건 없이 희생하는 무한하고 영원한 것입니다.십자가의 사랑은 의무적이거나 율법적이지 않습니다. 이러한 차이를 고려해서 예수님께서는 ‘새 계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시지 않으셨나 하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이 ‘새계명’을 지키는 사람이 바로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섬김’과 ‘내어놓음’으로 보여주셨다면 우리는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당신께서 주신 ‘새 계명’을 실천함으로서 응답해 드려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이 바로 하느님으로부터 사랑을 받는 조건인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의 삶을 통해서 세상이 알아보지 못하는 예수님을 우리는 알아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을 우리의 이웃들이 우리를 통해서 보게 될 것입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갈라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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