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와 ‘아니오’를 분명히 하는 그리스도인의 삶
마태오 5,17-37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많은 유혹을 받고 살아갑니다. 특히 세상의 논리보다는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셨던 비움과 겸손의 논리로 삶을 살아가야 하는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더욱 많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 그리스도인이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가를 알려 주십니다. 구약에서 전해져 오는 모든 율법을 지키라고 하십니다. 율법이 제정될 당시의 본래의 정신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인간은 모든 것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생각하고 적용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하면서도 세상과의 이해관계 앞에서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포기합니다. 당시의 바리사이들이나 율법학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율법의 근본 정신보다는 자신들을 드러내고 과시하기 위해서 율법의 근본정신을 왜곡하기 시작했습니다. 인간의 구원을 위해서 만들어졌던 법을 인간을 재단하는 법으로 왜곡시켰던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께서는 율법을 폐지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오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그 구체적인 실천방법으로 ‘살인해서는 안된다. 간음해서는 안된다. 거짓 맹세를 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네’ 와 ‘아니오’를 분명하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어쩌면 ‘예’와 ‘아니오’ 갈림길에 서서 하느님을 바라보는 존재입니다. 겸손은 하느님을 바라보면서 ‘예’를 답하게 함과 동시에 세상을 바라보면서 ‘아니오’를 답하게 합니다. 하지만 교만은 하느님을 바라보면서 ‘아니오’ 라고 답하고 동시에 세상을 바라보면서는 ‘예’라고 답합게 합니다.
십자가의 성요한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느님께 날아오르는 유일한 길은 ‘예’와 ‘아니오’의 대답 속에 들어있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아니오’라는 대답으로 피조물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남으로써 자기를 벗어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응(應)하면서가 아니라 부정하면서 거룩한 잠심(潛心)’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무(無)의 세계에 이르게 되며 그 정도에 따라 ‘예’라는 대답을 통해 하느님은 충만한 은총을 내려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 속에는 항상 ‘예’의 마음과 ‘아니오’의 두 응답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시면서 사탄으로부터 유혹을 받으십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사탄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유일한 길이 바로 ‘말씀’에 있슴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렇습니다. ‘말씀’은 우리를 세상에는 ‘아니오’를 하늘에는 ‘예’라고 대답하게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613조항의 율법 속에 담겨져 있는 참 사랑을 실천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