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마르코4,3)
오늘 복음 이전에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참가족은.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루카복음 1장 38절에 성모님의 말씀이 기억납니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빕니다.” 당신이 ‘주님의 종’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당신의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주인의 뜻대로 살아간다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말씀대로 ’하느님의 뜻’이 당신에게 이루어지기를 원하시는 성모님의 대답입니다.
오늘 복음은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입니다. 씨가 좋은 씨인가에 대한 토론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뿌리시는 씨이기에 최고의 씨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씨가 많은 열매를 맺는가 맺지 못하는 가는 씨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씨가 뿌려진 땅에 있는 것입니다.
말씀의 씨앗이 길바닥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는 사람이 말씀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부와 권력, 쾌락을 추구하는 세상적인 것이 하느님의 방식인 포기와 자비와 용서, 나눔의 삶의 방식이 전혀 스며들지 못함을 뜻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들었다 해도 세상의 생활방식과 가치관에 사로잡혀 그 말씀을 무시하고 배척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이 밥 먹여 주느냐?”라고 비아냥거리는 사람입니다.
말씀의 씨앗이 돌밭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는 사람이 복음 말씀에 관심을 두기는 하지만 그 말씀이 듣는 사람의 삶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을 말합니다. 피상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처음에는 말씀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였지만 말씀 안에 꾸준히 머무르면서 그 말씀의 삶을 살지 못하기 때문에, 시련이 오면 말씀에 의지하기보다 세상적인 다른 것에 의지하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예를 들면, 사주팔자를 따진다든지 점을 보는 것등을 말합니다.
말씀의 씨앗이 가시덤불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감동도 하고 그렇게 살고 싶다는 열망은 있는데, 십자가는 안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즉 이경우에 해당하는 사람은 세상걱정과 재물의 유혹과 그밖의 여러 가지 욕심에 가득 차 있는 사람입니다. 온갖 종류의 가시덤불, 진학, 결혼, 명예, 더 좋은 것, 미래에 대한 여러 걱정 등 욕심의 가시덤불은 말씀을 따르는 생각을 뒤덮어 버립니다. 하느님의 말씀도 자기 욕심을 채우는데 방해가 되지 않을 때만 좋은 것으로 인정될 뿐입니다. 가시덤불은 걱정과 욕심, 상처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상처를 지니고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말씀의 씨앗이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감동했고 결단을 내렸고 삶의 방향과 가치관을 180도 바꾸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열린 마음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여서 ‘서른 배, 예순 배, 백 배’의 열매를 맺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들은 하느님 말씀을 늘 최우선에 두고, 삶의 기반과 지침으로 삼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믿음, 희망, 사랑의 열매를 맺음으로써 등경위의 등불처럼 세상을 환히 비추게 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모든 삶의 기준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말씀을 더욱 더 깊이 깨닫게 됩니다. 깨닫게 되면 풍성한 열매를 맺어 자신과 다른 이에게 유익을 줍니다.
성모님의 삶이 바로 우리에게는 말씀이 좋은 땅에 뿌려진 것의 이상적인 모습이라고 할 것입니다. 나의 가족이 바로 우리의 가족으로 바뀌는 삶입니다. 나만의 형제 자매가 아닌 하느님 안에서 그분의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으로 확장되어가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말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