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3주일 강론
마태오 4장 12-23
오늘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이 잡혔다는 말을 듣고 갈릴래아로 물러가셨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당신이 자라신 나자렛을 떠나서 즈불룬과 납달리 지방 호숫가에 있는 카파르나움으로 가셔서 자리를 잡으셨다고 합니다. 이 모든 일이 이사야 예언자를 통해서 이루어진 예언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어둠 속에서 살아가던 이들에게 빛으로 떠오르신 분이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큰 빛으로 예언되신 예수님은 우리의 구세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세상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위함이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전능하신 하느님이라는 뜻을 지닌 히브리말 ‘엘 샤다이’라는 말은 전 우주의 창조주이시면서 전 우주의 모든 권한을 가지고 계신 분을 의미합니다. 내가 어둠 속에서 살아가고 있을 때에도 내가 밝음 속에서 살아갈 때도 언제나 함께 하시는 분이십니다. 믿음 안에서 나의 삶의 과거를 되돌아 보면 지금의 내가 있기 위해서 하느님께서 어떻게 함께 하고 계셨나를 알 수가 있습니다. 내가 어둠과 고통의 질곡 속에서 힘들어 할 때, 당신을 원망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을 때에도 그분은 저와 함께 하셨습니다. 그러한 어둠의 시기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는 사실을 이제사 깨닫는 어리석음에 주님께 용서를 청합니다. 바로 이 순간 주님께서 나를 초대하고 계십니다. ‘돌아오라’고 하십니다. ‘회개’에의 초대입니다. 바로 내가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에 부정했던 ‘전능하신 하느님, 엘 샤다이’께서 지금 ‘돌아오라(슈브)’고 부르시는 것입니다.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초대합니다.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라는 말은 이미 하늘나라가 와 있다는 뜻입니다. 즉 예수님의 오심과 함께 하늘나라가 시작되었고 이제 완성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회개와 하늘나라는 밀접한 연관이 있슴을 보게 됩니다. 세례자 요한의 삶이 철저하게 자신을 들여다 보고서 자신의 정체성에 성실했던 삶이었다면 그 삶은 바로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삶인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이유가 어디에 있나를 세례자 요한을 통해서 알게 되는 것입니다. 돌아간다는 말은 바로 나와 함께 하시는 하느님 안에서의 나를 알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나에 성실한 삶을 살아감을 말합니다. 하느님께서 계획했던 나의 삶으로 돌아가는 삶이 바로 회개의 삶입니다. 돌아가는 그 순간 하늘나라가 나에게 와 있습니다. 나에게 변화는 없지만 이 세상을 바라보는 나는 변했습니다. 어둠과 시련과 고통이 이제는 나에게 하늘나라를 살게하는 도구가 됩니다. 희브리서의 말씀입니다. “모든 훈육이 당장은 기쁨이 아니라 슬픔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그것으로 훈련된 이들에게 평화와 의로움의 열매를 가져다 줍니다.”(희브 12,11).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졌던 그 예언의 말씀이 이제는 나를 통해서 이루어져 갑니다. 내가 세상의 큰 빛이 되는 삶입니다. 돌아가는 삶입니다. 돌아가면 하늘나라가 보입니다. 돌아가면 하늘나라가 이미 함께학 있습니다. 새로운 나를 발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