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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1-28 13:03
   [영성으로 읽는 성인성녀전] (20) 미라의 성 니콜라오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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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kchung6767
    조회 : 1,613  



[영성으로 읽는 성인성녀전] (20) 미라의 성 니콜라오 주교 ②

하느님과 합치로 진정한 관계의 완성 이뤄

박해 고난 속에도 신자들 향한 사랑 키우며

이방인들 위한 목자로 이도교 개종에 힘써

발행일 : 2010-02-28 [제2686호, 10면]



우리는 이웃관계 속에서 나 자신을 형성하고, 궁극적으로 하느님을 향해 나아간다. 하느님은 이미 내 안에 ‘형성의 진리’를 심어 주셨고, 이 세상을 ‘형성의 장’으로 만들어 놓으셨다. 우리는 하느님의 형상을 닮아 형성되도록 창조되었다. 우리 모두는 하느님을 향하도록 형성되었고, 그 형성의 진리를 파악하는 것이 바로 영성생활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관계’다. 부모, 친구, 가정, 사회….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이 관계를 통해 우리는 궁극적 진리를 향해 형성되어 간다. 우리는 관계를 통해 성장하고, 관계 안에서 진리를 터득한다. 사실 관계가 우리의 모든 것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어지는 관계도 그렇고, 우리가 만들어 나가는 관계도 그렇다.


니콜라오 성인의 관계에 대해 알아보자. 부유한 부모님께서 일찍 돌아가신 때문에 성인은 많은 유산을 물려받았다. 그랬던 그는 가난한 이웃을 만나게 된다. 성인은 가난한 이웃과의 관계에 관심을 가졌고, 그 관계를 잘 형성시켜 나간 것이다.


물려받은 유산을 흥청망청 쓰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성인은 그 많은 재산을 오직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사용한다. 관계를 애덕으로 승화한 것이다.


그런 그가 사제가 되고 주교가 됐다. 이후 맺게 되는 관계는 로마와의 관계다. 그런데 이 관계가 쉽지 않았다. 33세경에 주교가 된 성인은 34세부터 박해를 받아 10여 년을 감옥에서 보내게 된다. 


인간적 유혹을 받았을 수 있다. 박해를 하는 로마와 타협해 배교를 하고 인간적으로 편안한 관계를 유지하고 싶었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성인은 로마와의 불편한 관계를 ‘선택’한다. 하느님과의 합치를 이루며 신앙인들을 열렬히 사랑하는 쪽을 선택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로마와의 불편한 관계를 통해, 진정한 관계의 완성을 이룬 것이다. 여기서 진정한 관계의 완성이란 하느님과의 합치를 의미한다.


과거 민주화 운동 시절 당시, 원주교구의 고 지학순 주교님께서도 감옥에 갇힌 일이 있다. 지 주교님께서는 공동 감옥에 수감 되셨는데, 방에 있는 화장실을 손수 청소하는 등 모범을 보이셨다고 한다. 하느님과의 일치는 이처럼 삶의 모범으로 드러나게 된다. 니콜라오 성인의 감옥 생활도 마찬가지였다. 성인은 어려움 속에서도 늘 하느님과 합치하며 신자들에 대한 사랑의 열망을 키워 나갔다.


이후 종교 자유의 시대가 왔을 때 석방된 성인은 곧바로 이방인을 위한 목자로 활동한다. 특히 이교도들의 개종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당시 교회는 많은 이단들로 인해 고민하고 있었다. 특히 예수님의 신성을 부정하는 아리우스 이단이 골치였다. 아리우스파들은 삼위일체 교리를 부정하고, 예수님이 단순히 하느님과 인간의 중재자라고 설교했다. 아리우스 이단과 관련해 니체아공의회가 열렸는데, 니콜라오 성인이 이 공의회에 참석했다. 그리고 거짓 지도자들의 가르침을 반박하고 신자들이 바른 진리를 따라 살 수 있도록 큰 역할을 했다.


그런데 이즈음 니콜라오 성인은 많은 세속적 문제로 고민하게 된다. 세 명의 청년들이 누명을 쓰고 자칫하면 사형을 당해야 할 상황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또 몇 명의 고관들도 누명 때문에 아까운 목숨을 잃을 처지였다. 이들에게는 분명 도움이 필요했다.


오늘날 우리도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신앙문제와는 별도로, 사회적 문제에 대해 종종 고민을 하게 된다. 진리를 위해 앞장서 이야기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세속적 문제보다는 내적 신앙문제가 더 중요하다는 유혹을 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적 신앙생활과 사회에 대해 진리의 목소리를 외치는 것은 별개로 놓고 볼 문제가 아니다. 이 두가지는 마차를 함께 끌고 가는 두 바퀴다. 내적 신앙생활의 완성은 진리의 선포로 이어지고, 진리의 선포는 내적 신앙생활의 자연스런 결과다. 완덕은 저절로 드러나게 된다. ‘선(善)은 저절로 넘치는 법이다’(Bonum sui diffusivum est, 라틴어 격언)


그렇다면, 니콜라오 성인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을 위험에 처한 이들을 위해 무엇을 했을까.



[영성으로 읽는 성인성녀전] (21) 미라의 성 니콜라오 주교 ③

목숨과 진리 맞바꿀 용기 있는 목자

타고난 좋은 여건 훌륭한 내면형성으로 승화

상황에 굴하지 않고 주님의 형성의 진리 체득

발행일 : 2010-03-07 [제2687호, 12면]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세 명의 청년들이 누명을 쓰고 자칫하면 사형을 당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정치적 파워 게임의 희생양으로 몰린 또 다른 몇 명의 고관들도 누명 때문에 아까운 목숨을 잃을 처지였다. 이들에게는 분명 도움이 필요했다. 하지만 아무도 나서서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 이들을 변호하기 위해 나섰다가는 함께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사실 자신에게 별다른 피해가 오지 않는 상황에선 누구나 정의를 부르짖을 수 있다. 물리적 재산적 신체적 정신적 피해가 오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 선다면 누구나 타인을 욕하고, 비방하고, 비판하고, 깎아내릴 수 있다. 내가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움츠러들기 마련이다. 이것은 그 사람이 비겁하거나 용기가 없어서가 아니다. 사람은 원래 그렇다. 그만큼 자신의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극한 상황에서 나서서 진리를 선포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역사 특히 신앙의 역사는 이렇게 목숨과 진리를 맞바꿀 수 있는 용기있는 이들에 의해 진보한다.


니콜라오 주교도 그중 한 사람이다. 성인은 기꺼이 진리의 편에 섰다. 사형을 당할 처지의 사람들을 위해 적극 변호했으며, 결국에는 누명을 풀어주고 생명을 건져냈다. 이 모든 것을 볼 때 성인은 참으로 ‘형성의 진리’를 몸으로 체득하신 분이다.


성인은 부모님께서 일찍 돌아가셨지만, 어린 시절부터 지적인 면과 지혜의 덕, 신앙의 덕을 잘 쌓으며 성장했다. 하느님(형성하는 신적 신비)께서 성인의 마음속에 심어주신 형성에로의 초대에 적극 응한 것이다. 내면 형성을 잘 성취한 것이다.


이 내면 형성의 완성은 이웃과의 형성 즉 상호 형성의 완성으로 이어진다. 그는 늘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들의 아픔과 함께했고, 함께 울고, 함께 살려고 노력했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과의 관계를 통해 하느님께서 형성되도록 마련한 장을 훌륭히 걸어간 것이다. 성인은 부유한 가정에서 비뚤게 성장할 수 있었다. 우리 주위에는 많은 재산을 물려받은 청년이 흥청망청 살아가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성인은 그 모든 좋은 여건을 훌륭한 내면 형성, 상호 형성으로 승화시켰다.


일반적으로 보통 사람들은 이 정도 단계에서 성장을 멈춘다. 우리도 노력하면 내면 형성과 상호 형성을 어느 정도 완성할 수 있다. 하지만 성인은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간다. 바로 상황 형성이라는 경지로 올라간 것이다.


상황은 시대와 장소, 문화, 여건에 따라서 각기 다른 모습으로 우리 각자에게 찾아온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상황’이라고 말할 때 그 상황은 세 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 장소, 사물, 사건이 그것이다. 성인은 초기교회 미라라는 한 지역의 주교가 됐다. 이러한 직위는 다양한 사건과의 만남을 초래하기 마련이다. 성인에게 있어서 가장 큰 사건은 박해였다.


박해 앞에서 많은 이들이 신앙을 버렸고, 또 신앙적으로 위축됐다. 하지만 성인은 기도 안에서 하느님께 열렬한 갈망을 드렸고, 하느님과의 만남이라는 관상 안에서 머물렀으며, 그 관상을 삶 속에서 실천했다. 이러한 성인의 모범은 10년이나 되는 감옥생활에서도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성인은 주어진 상황에 위축되거나 움츠러 들지 않았다. 오히려 상황을 완덕으로 승화시켰다.


당시 로마는 세속적 힘에만 의지하며 지탱하던 그런 제국이었다. 하느님께서 인류 역사에 섭리하신 형성적 진리를 거스르는 반형성적 제국이었다. 하지만 성인은 그러한 반형성적 상황에 굴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형성적 상황을 형성적 상황으로 극복해 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잘 보아야 한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미리 형성시켜 놓으신 선형성의 목적을 성취해야 한다. 그래야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미리 섭리해 놓으신 형성의 원리를 체득해야 한다. 그래서 그 원리를 완성시켜 나가야 한다. 영성은 저 하늘 위에 있는 거창한 그 무엇이 아니다. 하느님께서 나 자신의 내면에 심어 놓으신 당신을 갈망하는 마음을 일으켜야 한다. 그리고 하느님을 향해 꾸준히 정진해 나가야 한다. 그래야 이웃과 세계 안에서 하느님의 형성의 섭리를 볼 수 있고, 하느님을 형성의 장 안에서 현현시키는 삶을 살 수 있다.

[이 게시물은 webmaster님에 의해 2014-03-15 12:10:18 우리의 신앙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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