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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2-15 09:19
   [성녀 데레사의 가르침에 따른 영성생활] 3.성녀 데레사는 누구인가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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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kchung6767
    조회 : 2,084  


[성녀 데레사의 가르침에 따른 영성생활] 3.성녀 데레사는 누구인가 ①

성 예로니모에 감화, 부모 몰래 수녀원 입회

 대(大) 데레사
 
성녀 데레사의 가르침에 따른 영성생활에 대해 나누기 전에 먼저 그분은 어떤 분이셨는가 하는 그분의 인물됨부터 살펴보는 것이 순서이지 싶습니다. 한국 교회에는 '성녀 데레사'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성녀가 두 분 계십니다. 한 분은 소화 데레사라 불리는 성녀로, 19세기 말 프랑스에서 태어나 15살에 리지외 가르멜에 입회해 24살이라는 짧은 생을 마감한 분을 말합니다. 이 성녀의 정확한 수도명은 아기 예수와 성면의 데레사이십니다. 반면, 같은 이름을 쓰지만 소화 데레사보다 350여 년을 먼저 살았던 성녀가 계십니다. 이분은 스페인 사람으로 세계사에서 스페인의 황금시대라고 불린 16세기에 살았던 성녀입니다. 이분은 통상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라고 불리기도 하고 정확한 수도명을 따라 '예수의 성녀 데레사'라고 불리기도 하며 소화 데레사와 구분하기 위해 '대(大) 데레사'라 불리기도 합니다.


 개종 유다인

 성녀 데레사의 조국 스페인은 1492년 800년 간의 이슬람 통치를 몰아내고 가톨릭 신앙을 바탕으로 통일함으로써 제국의 기틀을 세웠습니다. 당시 신앙이 달랐던 유다인, 아랍인들은 강제로 또는 자발적으로 개종함으로써 스페인에 통합됐습니다. 성녀 데레사의 집안은 본래 스페인의 경주라 할 수 있는 톨레도에서 성공한 유다계 상인 집안이자 유다교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한 집안이었습니다. 성녀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유다인이라는 출신을 숨기고 주류 사회에 편입하기 위해 '이달고'라는 하급 귀족 신분을 사서 가까스로 아빌라에 정착하게 됩니다. 성녀는 아빌라에서 1515년 3월 28일 그런 개종 유다인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성녀 데레사의 아버지 알론소 산체스는 두 번 결혼했습니다. 첫 번째 부인은 카타리나였는데 안타깝게도 두 남매를 낳은 지 얼마 후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그로부터 2년 후 산체스는 베아트리스라는 새로운 부인을 맞이하게 되는데, 이 부인으로부터 열 명의 자녀를 얻게 됩니다. 그 중 하나가 다름 아닌 데레사였습니다. 성녀는 어린 시절부터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부모님으로부터 좋은 영향을 받고 자랐습니다. 그래서 성인전을 읽었으며 로사리오 기도를 비롯해 수녀 놀이를 즐겨 했다고 합니다. 또한 성녀는 어느 날 하느님을 위해 순교하겠다는 마음으로 오빠 로드리게스와 함께 아랍 사람들이 산다고 생각했던 곳에 가서 순교하기 위해 가출을 하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그 길목에서 숙부가 그 두 아이를 만나 데려옴으로써 이들의 무모한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맙니다. 그러나 점점 커가면서 신앙만이 아니라 세속의 여러 가지 일들에 눈이 뜨기 시작한 성녀는 점점 신앙을 멀리했습니다. 어머니가 즐겨 보던 기사소설이나 연애소설에 탐닉했는가 하면, 사촌오빠들과 연애를 하기도 하고 그러면서 화장도 하고 치장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 발달 심리학의 도움으로 그 또래의 소녀들이 당연히 그런 성장과정을 겪는다는 점을 아는 우리로서는 사춘기 소녀의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받아들일 법하지만, 엄격한 가부장적 사회이자 철저한 종교 사회였던 16세기 당시 이런 성녀의 모습은 엇나가기 시작하는 소녀의 모습으로 보였을 겁니다. 그래서 이를 보다 못한 성녀의 아버지는 딸을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아우구스티노회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소녀들을 위한 기숙학교로 데려가 생활하도록 했습니다.


 아우구스티노회 수녀원의 기숙학교 생활

 갑작스런 환경의 변화로 성녀는 처음에 이 기숙학교 생활에 적응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곳의 사감으로 있던 브리세뇨의 마리아 수녀님이 보인 거룩한 표양은 이내 감수성 많은 사춘기 소녀 데레사의 마음을 사로잡고 맙니다. 성녀는 이곳에서 규칙적인 신심생활을 통해 어린 시절 가졌던 하느님을 향한 열정을 되찾았으며 나중에는 수녀가 되겠다는 마음도 갖게 됩니다. 그러나 성녀는 수녀가 돼도 아우구스티노 수녀회에 들어가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절친한 친구가 가르멜 수녀원에 있어서, 만일 수녀가 된다면, '강생 수녀원'이라고 불린 가르멜 수녀원에 가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차에 성녀는 그만 병이 나서 기숙사를 떠나야 했습니다. 아버지는 그런 데레사를 큰 언니가 살던 살라망카 근처의 카스테야노라는 작은 마을로 보냈습니다. 그곳에서 휴양을 하며 보내던 성녀는 가끔 그 근처의 오르티고사라는 곳에 사시던 숙부를 찾아가곤 했습니다. 숙부는 신심이 깊은 분이어서 그분의 서고에는 언제나 좋은 신심서적들로 가득했다고 합니다. 어느 날 그곳을 방문해서 숙부에게서 좋은 얘기도 듣고 쉬면서 무심결에 손에 잡힌 책을 보며 성녀는 그 책에 매료되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성 예로니모가 쓴 편지 모음집으로 성녀는 그 책을 통해 성인의 열정에 깊이 감화됐고 그때부터 진지하게 수도자가 될 것을 고민하게 됩니다. 언니 집에서 쉬면서 몸을 추스른 성녀는 아빌라로 돌아와 얼마 후에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새벽에 가르멜 수녀원으로 도망쳐 들어갔습니다. 1535년 성녀의 나이 만 20살 때의 일이었습니다.


 가르멜 수녀원 시절

 그 후 성녀는 수련을 받고 1537년 서원을 발해 정식으로 가르멜 수녀가 됐습니다. 그러나 그 이듬해 다시 몸이 아파 성녀는 잠시 수녀원을 나와야 했습니다. 이번에는 베세다스라는 작은 마을에 머물며 치료를 했는데, 역시 이곳에서도 근처의 숙부 댁을 자주 들르곤 했습니다. 그리고는 성녀의 기도생활에 깊은 영향을 주게 될 오수나의 프란치스코 신부가 쓴 「제삼 기도 초보」를 만나게 됩니다. 이때부터 성녀는 '거둠 기도'에 심취했으며 이 기도를 약 20여 년간 실천하며 보다 깊은 신비 기도로 나아가기 위한 수련을 했습니다. 1539년 성녀는 아빌라로 돌아왔지만 병은 더욱 악화됐으며 결국 죽음 직전까지 가게 됩니다. 심지어 사람들은 실신 상태에 있던 성녀가 죽은 줄 알고 장례를 치를 뻔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구사일생으로 되살아난 성녀는 그 후에도 몇 년간 병약한 상태로 지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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