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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10-02 05:59
   '작은 길'의 영성, 성녀 소화 데레사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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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정건석
    조회 :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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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장 수녀는 "그거, 아주 좋은 생각인데요."라며 응수하고 나서, 그 말이 약간 농담이려니 생각하고 웃고 있던 데레사 자매를 보고, "내가 자매에게 명령하는 것이니, 어린 시절의 추억을 모두 기록하세요." 하고 말했다. 하느님의 여종 데레사는 그 당시 아녜스 수녀가 원장으로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순명으로 쓰기 시작했던 것이다. 데레사는 자유시간에 써서 1896 120일 아녜스 영명축일 전날 저녁 기도시간이 되어 아녜스 옆을 지나면서 그 공책을 전해 주었다.

 

성녀는 자서전을 세권 두고 떠났는데, 첫째는 위에서 말한 대로 폴리나 언니에게, 둘째는 마리아 언니에게, 그리고 셋째는 공사가의 마리아 원장 수녀께 각각 드렸던 것이다. 이 조각들은 성녀의 1주기에 맞춰서 <한 영혼의 이야기>란 이름으로 성 바오로 출판사에서 처음 세상에 소개했고, 그 후 1956 <예수 아기의 성녀데레사의 자서전>이라는 제목으로 리지외에서 출판되었다.

 

이 밖에도 성녀는 편지와 시와 묵상, 그리고 연극 극본까지도 두고 갔는데, 이러한 저작들은 우리가 그를 아는데 필요한 1차적이고 핵심적인 원전임에 틀림없다.

 

"인생은 풀과 같은 것,

 

들에 핀 꽃처럼 한 번 피었다가도

 

스치는 바람결에도 이내 사라져

 

그 있던 자리조차 알 수 없는 것,

 

그러나 하느님의 사랑은 당신을 경외하는

 

자에게 처음부터 영원히 한결같고

 

그의 정의는 후손 대대에 미치리라."

 

데레사의 부모님은 아홉 자녀를 두었는데, 9남매 모두 노르망디주 알랑쏭(Alencon)에서 태어났다.

첫째가 마리 루이즈, 1860 2 22일생이고 둘째는 마리 폴리나, 1861 9 7일생이며 셋째 마리 레오니가 1863 6 3일생, 그리고 넷째 마리 엘레느와 다섯째 마리 요셉 루이, 여섯째 요셉 요한세자가 1864년과 66, 67년에 태어났으나 각각 네 살 반과 5개월,9개월만에 숨지고 일곱째 마리 셀리나가 1869 4월 태어났으며 여덟째 마리 멜라니 데레사는 1870년에 태어났으나 3개월만에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리 프랑수와즈 테레즈 마르탱(Marie Francoise There`se Martin) 1873년에 태어났던 것이다.

다섯째와 여섯째는 아들이었는데, 그들 부모는 아들이 태어날 때마다 사제로 봉헌하고 싶었지만 하느님께서는 둘 다 일찍 데려가셨고, 다른 두 딸도 역시 아기 때 떠났으니 살아 남은 아이는 딸 다섯이었다. 딸들은 모두 수녀가 되었다. 그 중 셋은 리지외의 가르멜 (Carmel de Lisieux)의 수녀가 되었다.

 

아버지 마르탱씨는 데레사를 특별히 사랑했는데, 그러한 사랑이 아이를 약간이라도 비뚤어지게 하지는 않았느냐고, `악마의 대변자' 가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시성소송 청원자에 대칭이 되는 `신앙 변호인' 즉 검사의 집요한 태도가 때로는 소송에 반대한다는 인상을 주는 까닭에 비공식적으로 그를 가리켜 `악마의 대변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1910 8, 신앙변호인으로 나선 피에르 테오필 뒤보스크 신부의 물음에 아녜스 수녀가 증언한 대목을 보자.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아버지는 그 아이가 가정 어리고 영리하고 사랑스러웠기 때문에 특별히 사랑하신 것은 사실이지만, 버릇없이 만들지는 않으셨습니다. 아이가 세 살 되던 해의 어느날, 버릇없는 말로 아버지께 "아빠가 이리로 와요!" 라고 했을 때, 아버지는 아이를 꾸짖어, 스스로 잘못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아이에겐 단 한 번의 꾸중으로 충분했으므로 그 이후부터 아이는 늘 대단히 공손했습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언니들 중에서도 특별히 그의 어머니 노릇을 하게된 폴리나, 즉 아녜스 수녀는, 그 아이가 한 번도 불순종한 기억이 없다고 증언했다.

 

모든 일에 허락을 청해 왔습니다. 한가지 좋은 실례로, 아버지가 그 아이에게 산보를 가자고 하시면, 아이는 `폴리나에게 가서 물어보고 올께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산보를 가자고 계속 종용하시더라도 만일 내가 산보 갈 허락을 하지 않으면, 아이는 그 즉시로 순종했습니다. 그러나 가끔, 그 아이는 아버지가 자기를 데리고 산보하러 나가시는 것이 어떠한 기쁨이 되는가를 잘 알고 있었기에, 울먹인 때도 있었습니다."

 

데레사는 그의 자서전에서 가족들을 매우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 가족을 사랑하지 않는 성인들을 나는 이해하지 못하겠어요."라고 덧붙이고 있다. 이같은 가족애에 대한 집착이 `하느님 사랑' 과 대립되지 않는다고 말하기는 곤란할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아버지와 언니들에게 오랫동안 기대어 살아왔던 의존상태로부터 그가 어떻게 풀려나게 되었는지, 이것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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