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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12-17 14:32
   한계를 넘어서는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마태 1, 1-17) - 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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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kchung6767
    조회 :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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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859

2016년 12월 17일 토요일

한계를 넘어서는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마태 1, 1-17)


“다윗의 자손이시며 아브라함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마태 1, 1)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을 누구나 한 번은 심각하게 합니다. 자신의 존재의 원천을 찾아가는 질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야 당연히 나의 존재의 원천은 하느님이시라고 답을 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이라 하더라도 혈연적인 존재의 뿌리에 대한 관심을 버리지는 못합니다. 


사람들이 결혼을 할 때가 되면 자신들의 배우자를 찾을 때 이 사람이 어느 가문의 사람인가에 대한 많은 관심을 가집니다. 조상들이 누구인 가에 따라서 그 사람을 달리 보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예수님의 족보를 소개해 주면서 혈연적인 뿌리 때문에 사람의 보편적인 존엄성이 훼손을 받아서는 안됨을 알려 줍니다. 


구체적으로 예수님의 족보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1절을 보면, 예수님의 족보는 먼저 “다윗의 자손이며 아브라함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라고 말하면서 시작합니다.  여기서 ‘다윗의 자손’이라는 말은 ‘예수님은 그리스도’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당시의 유다인들은 다윗의 후손 중에서 메시아(그리스도)가 나온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다윗의 후손이라는 말은 이 의미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말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축복의 약속이 예수님에게까지 이어진다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다윗의 자손이며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말은 바로 예수님께서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메시아 즉 구세주이시라는 것을 말합니다. 


마태오 복음사가가 이렇게 예수님의 족보를 독자들에게 굳이 알려주는 이유는 이 족보에 담겨진 숨겨진 의미를 잘 깨닫도록하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바빌론 유배 이후부터 유대인들은 자신의 족보를 우리와 마찬가지로 아주 소중하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동시에 자신들을 하느님으로 부터 선택받은 민족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신들의 순수한 혈통을 보존하기 위해서 대단한 노력을 해 왔습니다. 따라서 이들의 이방인에 대한 편견은 너무나 당연한 것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마태오 복음사가가 예수님의 족보를 복음서의 시작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단순히 예수님의 혈통과 가문을 이야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은 아브라함의 후손이고 다윗의 자손인 메시아' 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또 하느님께서 아브라함과 다윗 의 역사를 인도하셨으며, 그들에게 특별한 약속을 주셨는데, 이제 예수님 안에서 그 약속들이 성취되었음을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족보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는 또 다른 복음서인 루카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족보를 마태오 복음서와는 달리 아담에서 부터 시작합니다. 이 말은 바로 예수님은 전 인류의 구세주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압니다.


지금은 조금 다르지만 우리의 전통과 마찬가지로 유대인의 족보는 남자들의 이름만을 기록합니다.  그런데 오늘 마태오 복음의 족보 속에서는 남자들 뿐만 아니라 여인들의 이름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남자들의 이름의 면면을 보면,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들의 이름이 다 들어가 있습니다. 


이에 덧붙여서 4명의 여인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타마르와 라합, 룻 그리고 우리야의 아내’입니다.  '타마르'와 '라합'은 가나안 원주민이고, '룻'은 모압 출신 여자입니다. '우리야의 아내(밧 세바)'는 남편이 이방인입니다. 그래서 네 여자의 이름이 언급된 것은 예수님께서 유대인들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까지도 구원하신다는 구원의 보편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봅니다. 


16절을 보면, 다섯 번째의 여인의 이름이 나옵니다.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고 알려줍니다. 가부장적 구조 속에서 도저히 상상할 수가 없는 표현법, 즉 ‘요셉을 마리아의 남편’이라고 말합니다. 이름을  표현하는 순서를 바꿈으로서 요셉에게서 마리아에게로 촛점을 바꾸는 것입니다.  당시의 관습으로는 생각할 수도 없는 것을 한 줄로서 그 관습을 깨어 버린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예수님의 조상들에 대한 단순한 소개로 볼 수 있는 이 족보를 통해서 하느님의 심오한 구원의 경륜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인간에 대한 크신 사랑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고정관념을 깬다는 것이 얼마난 어려운지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유일하게도 자신의 고정관념을 만들어 가고 동시에 이 고정관념을 깨뜨리기도 합니다. 사랑은 인간을 변화시키는 큰 힘입니다. 사랑은 사람을 살게하는 힘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의 생명마저도 내어놓을 수가 있습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사람의 배경에 따라서 평가하기 보다는 하느님의 보편적인 사랑에 응답하는 하루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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