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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8-15 07:55
   가식의 삶에서 본질의 삶으로 (마태 19, 23-30) - 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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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kchung6767
    조회 : 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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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752

2016년 8월 16일 화요일

가식의 삶에서 본질의 삶으로 (마태 19, 23-30)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부자는 하늘나라 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것이다.”(마태 19, 23)

오늘 저에게 다가오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세상 속에서 세상을 초월하는 삶을 살아가시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하느님께 종속되는 사람은 세상으로부터 자유하는 삶을 살아가가지만 하느님으로부터 자유하는 사람은 세상의 노예로 살아갑니다. 참으로 놀라운 사실은 우리가 필요에 의해서 선택하는 세상이 나를 그의 노예로 만든다는 것입니다. 

교황님께서 한국을 방문하신 지도 벌써 2년이 지났습니다. 여전히 교황님의 방문의 감동이 저희들의 마음 깊은 곳에 남아 있습니다. 교황님께서 방한하시고 2년이 지난 지금 우리 가톨릭교회의 모습은 어떻게 변했을까요? 그리고 우리는 교황님의 말씀을 어떻게 실천하고 살아왔는지요? 

2년 전 교황님께서 한국을 방문하실 당시에 교황님께서 이곳을 방문하셔서 보여주신 두 얼굴에 관한 어느 신문의 기사를 읽으면서 많은 공감을 했었습니다.  당시의 그 기사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교황님께서 한국에 오셔서 두얼굴의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당신의 양들에게는 한없이 인자한 아버지의 모습이지만 당신의 동료 후배 목자들에게는 자신의 본문을 잊어서는 안됨을 강조하시는 엄격한 모습을 보여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번 교황님을 맞을 당시나 2년이 지난 지금이나 앞으로도 살아가면서 잊지 말아야 하는 중요한 메시지 입니다. 

본인을 비롯한 많은 사제들이 부유하게 살아가고 있슴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으면서도 복음적인 청빈으로 나아가지 못함은 오늘 복음의 부자청년과 다를바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교황님께서 음성 꽃동네에서 수도자들과의 만남의 자리에서 "청빈(淸貧) 서원(誓願)을 하지만 부자로 살아가는 봉헌된 사람들의 위선(僞善)이 신자들의 영혼에 상처를 입히고 교회를 해칩니다."는 말씀이 가슴에 비수를 들이대는 것처럼 아프게 들려옴은 왜일까요? 2년 전에 들었던 이 말씀이 2년이 지난 지금도 저의 가슴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슴은 여전히 저의 삶에 부족함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를 비롯한 많은 수도자 성직자들이 복음적인 청빈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슴을 우리는 잘 알고 있고 동시에 반성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머리와 마음으로는 되는 것들이 실제 삶에서 실천되지 않고 있슴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교황님의 이 말씀을 통해서  많은 수도자 성직자들은 청빈으로 나아가는 힘과 용기를 갖게 되었을 것입니다.  

교황님의 이 말씀은 꼭 물질적인 부유함 뿐만 아니라 영성의 세속화까지 포함하는 말씀일 것입니다. 어려운 말이지만 그러한 삶에서 자유롭지 못한 본인에게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힘이 되었던  말씀이기도 했습니다. 

이어서  교황님께서는 "봉헌 생활에서 청빈은 '방벽(防壁)'이자 '어머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청빈은 봉헌 생활을 지켜 주기에 '방벽'이고, 성장하도록 돕고 올바른 길로 이끌기에 ‘어머니"라는 것입니다. 이 교황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다시금 본질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러한 글을 쓰고 있는 본인도 예외가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본질에 충실한 삶, 너무나 당연한 교황님의 말씀이지만 그분의 이 말씀이 저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살아 움직임은 여전히 본질에 다가가지 못하는 삶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도 위안이 되는 것은 매일 아침 예수님을 바라 보면서 하루의  삶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분의 말씀에 귀기울이고 새롭게 시작하는 하루, 나는 그분을 위해서 무엇을 할것인가를 결정하고 하루동안 실천하는 삶을 살아가고자 노력합니다. 그리고 잠자리에 들면서 아침의 결심이 어떻게 일상 안에서 실천되었는지를 반성하고 하루 동안에 베풀어 주신 주님의 은총에 감사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부자 청년은 하느님보다 자신의 부를 더욱 사랑합니다. 여기서 이 청년이 갖고 있는 부는 재산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이 갖고 있는 형식적인 삶의 양식입니다. 당시의 바리사이들이나 기득권자들이 갖고 있던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외적인 사고 방식들입니다.  자신을 드러내고 부를 소유하고자 했는데 이 외형적인 삶의 양식이 자신을 소유해 버렸습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자유함이 바로 세상의 노예가 되게 했습니다.  인간의 눈을 의식하고 자신을 과시하며 재산에 대한 집착은 결국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포기하게 합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자신들의 삶의 주인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는 말로 오늘 말씀을 시작하십니다. 이 말은 일반적으로 당신께서 엄숙하게 어떤 중요한 것을 선언을 하실 때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따라서 이 말의 다음 말이 중요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선언이 바로 “부자는 하늘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렵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 말이 상대적으로 가난한 사람이 하늘나라에 들어가기가 쉽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가난한 사람이라도 세상을 하느님보다 더 사랑한다면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입니다. 즉 하느님 보다 세상적인 부를 더 사랑하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가난하다고 하더라도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부자란 일반적으로 하느님보다 세상적인 부를 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복음적인 청빈이란 바로 세상적인 부유함보다는 하느님을 더욱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부유함이 가져다 주는 세상적인 편안함과 편리함보다는 가난의 불편함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교황님의 말씀을 되씹어 봅니다. 일선의 사목현장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며 살아가고 있는 성직자 수도자들에게 하시는 교황님의 말씀이 한국 가톨릭 교회 내에서 많은 열매를 맺기를 진심으로 기대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나의 삶에서 구체화되는 하루이기를 희망합니다. 

“보라, 내가 오늘 민족들과 왕국들을 너에게 맡기니, 뽑고 허물고 없애고 부수며 세우고 심으려는 것이다.”(예레 1, 10)는 말씀을 기억합니다. 

오를 하루를 시작하면서 나에게서 뽑고 허물고 없애며 부수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무엇을 세우고 심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매일의 삶을 통해서 조금씩 조금씩 실천하고자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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