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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6-26 04:32
   성 이레네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에 (마태 8, 23-27) - 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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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kchung6767
    조회 :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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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710

2016년 6월 28일 화요일

성 이레네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에 (마태 8, 23-27)

“주님, 구해 주십시오. 저희가 죽게 되었습니다.!” (마태 8, 25)

오늘은  성 이레네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입니다. 먼저, 오늘 축일을 맞으시는 여러분 모두에게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성인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해서 굿뉴스 성인편에서 소개하고 있는 성인에 대해서 알려드립니다. 

성 이레네우스(또는 이레네오)는 소아시아의 스미르나(Smyrna, 오늘날 터키의 이즈미르, Izmir) 출신으로 스승인 폴리카르푸스(Polycarpus, 2월 23일) 주교를 통해 사도적 정통성을 이어받았다. 그의 출생 연도에 대해 논란이 많지만 130-140년 사이로 추정된다. 그는 로마(Roma)에 와서 오랫동안 머물렀으며, 이때 성 유스티누스(Justinus, 6월 1일)가 세운 교리 학교에서 공부한 것으로 보인다. 

그 후 언제 무슨 이유로 프랑스의 리옹으로 가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 투르(Tours)의 성 그레고리우스(Gregorius, 11월 17일)에 의하면 성 폴리카르푸스가 그를 프랑스 지방의 선교사로 파견하였다고 한다. 그는 177년 리옹 교회의 특사로 교황 성 엘레우테루스(Eleutherus, 5월 26일)를 방문하여 몬타누스주의 문제에 대해 상의하고 리옹 지방의 순교자들에 대해 보고하였다. 그가 로마에 체류하는 동안 리옹의 주교 포티누스(Photinus, 6월 2일)가 순교하였으며, 리옹에 돌아온 즉시 그는 주교로 선출되었다.

그는 리옹 지역의 복음 선포에 열정적이었고, 프랑스 지방의 영지주의자와 피나는 싸움을 전개하였다. 이때 그가 쓴 저서가 “이단 논박”(Adversus Haereses)이다. 그는 이단 사상의 정체를 적나라하게 폭로하면서 동시에 초기 교회의 정통 신앙을 확립하였다. 

성 이레네우스는 ‘가톨릭 교회의 수호자’라고 불릴 정도로 2세기 신학자들 중에서 가장 뛰어났으며, 특히 영지주의 계통의 이단들에 대항하여 정통 교리를 수호한 대표적인 교부이다. 그의 저서에는 사도들의 전승이 그대로 담겨 있으며 또 교황 수위권의 중요한 근거가 되고 있다. 투르의 성 그레고리우스(Gregorius)에 의하면 그는 202년경에 순교하였다고 한다.(매일미사에서 가져옴)

유한한 존재이기에 우리 인간들은 살아가면서  많은 위기의 순간과 대면하게 됩니다.  이 위기의 순간에 대면하게 될 때 나는 어떠한 모습일까 생각해 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제자들의 모습은  바로 나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함께하심에도 불구하고 위기 앞에서 불안해 하며 예수님께 채근합니다.  이 순간 마태오 복음 8장 시작부분에 나오는 백인대장의 믿음과 순명하는 모습이 생각납니다. 

창세기 19장을 보면,  하느님의 벌을 눈앞에 두고서도 세상적인 것에  미련을 두고 있는 롯의 모습을 보게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생각하시지만 인간은 자신 만을 생각하는 모습입니다.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하시는 하느님의 말씀을 어기서 세상적인 것에 미련을 떨치지 못하고 뒤돌아 보아 소금기둥이 되어버린 롯의 아내가 마음 속 깊이 남아 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하면서도 두려워하는 제자들의 모습이 안타깝습니다. 여전히 신뢰가 부족한 모습입니다. 호수에 큰 풍랑이 일어 파도가 배를 뒤덮자 제자들은 무서워 떨면서 예수님을 깨우며 “주님, 구해 주십시오. 저희가 죽게 되었습니다.” (마태 8, 25)하고 말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왜 겁을 내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하고 말씀하십니다.  

믿음의 부족은 인간의 나약함을 드러나게 합니다. 믿음이 전제가 되면 인간은 가장 강한 존재가 되지만 믿음이 사라지면 가장 약한 존재가 되는 것이 인간인가 봅니다. 

오늘 아침에 나에게 다가오시는 예수님께서는 “왜 겁을 내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마태 8, 26) 하고  말씀하십니다. 이 예수님의 말씀은 바로 믿음의 부족과 두려워 함이 밀접한 관계가 있슴을 보여줍니다. 두려움은 믿음의 부족에서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구원의 전제조건임을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무슨 두려움이 있겠습니까? 하느님께서 나의 아버지이신데 두려워해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는데 말입니다.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상사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아래사람들의 관심은 상사가 나를 신뢰하는 가에 관심을 둡니다. 상사에 대한 신뢰심이 있다면 자신있게 모든 일을 처리하지만 상사에 대한 신뢰심이 없다면 눈치만 보기도 할 것입니다. 

인간관계 안에서의 신뢰는 상호간의 노력에 의해서 형성되어 간다면 하느님과 우리와의 관계안에서의 신뢰의 관계는 우리의 일방적인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유는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변함없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변화는 우리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쉬운 관계이면서 참으로 어려운 관계일 수 있습니다. 인간은 워낙 변화무쌍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러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에서 첫 번째(5-7장)에서 가르치신 후에 산에서 내려오셔서 여러가지 베드로의 장모와 많은 병자들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 바로 전 부분에서 당신을 따르기 위해서는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어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세상적인 것으로부터 자유함이 필요함을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종이 되면 자유하지만  하느님으로부터 자유하면 세상의 노예가 될 것입니다. 이러한 우려의 결과가 바오 오늘 복음에서 믿음의 부족에서 오는 두려움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의 모습은 언제나 열려진 모습입니다. 믿음을 갖고 찾아오는 사람을 거부하지 않으십니다. 또 당신께서 먼저 다가가야 하는 분들에게는 먼저 다가가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의 삶의 모습을 보면서 아 식별이 필요하구나. 따뜻한 마음이 필요하구나. 그리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적응할 수 있는 적응력이 필요하구나를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기 위해서는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 고 말씀하시면서 세상적인 것에서의 자유함을 강조하십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어라.” 고 말씀하시면서 우리의 삶이 하느님 중심의 삶으로 바뀌어야 함을 강조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십니다.   바로 그러한 때에  파도가 배를 뒤덮습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예수님께서는 잠을 주무십니다. 제자들은 풍랑을 보고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과 주무시는 예수님의 대조적인 모습을 바라봅니다. 

어떻게 저분은 이러한 상황속에서도 태평스럽게 잠을 주무실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제자들이 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웁니다. 제자들의 말입니다. “주님, 구해 주십시오. 저희가 죽게 되었습니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믿음이 약한 제자들의 모습입니다. 죽음 앞에서 두려워하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참으로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이 위기의 순간을 구해줄 능력이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을 통해서 추측할 수가 있는 것 같습니다. 

“왜 겁을 내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하고 말씀하시는 그 이면에는 믿음이 약한 자들이 갖는 특징을 단적으로 명확하게 표현하십니다. 믿음의 부족에서 두려움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다면 이렇게 호들갑을 떨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시면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십니다. 인간의 문제뿐만 아니라 자연의 문제까지 해결하시는 예수님을 봅니다. 세상 만물이 예수님의 지배하에 있슴을 보게됩니다.

배는 교회를 상징합니다. 바다는 어둠의 세력이 지배하는 곳입니다. 교회가 어떠한 힘들고 어려움 상황에 있더라도 믿음만 있으면 이를 잘 극복해 나갈 수 있슴을 보여줍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믿음의 삶을 살아가야 함을 새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오늘 축일을 맞으시는 여러분 모두에게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비록 세상 속에서 살아가지만 이러한 와중에서도  하느님께 속한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세상적인 것으로부터 자유하는 삶을 살아가고자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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