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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6-20 07:45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 수도자 기념일(마태 7, 6. 12-14) - 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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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kchung6767
    조회 : 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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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704

2016년 6월 21일 화요일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 수도자 기념일(마태 7, 6. 12-14)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마태 7, 12)

먼저 오늘 축일을 맞으시는 여러분 모두에게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일반적으로 우리에게는 낯설은 성인에 대해서 굿 뉴스 성인편에 나오는 성인에 대한 소개를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성 알로이시우스 곤자가(또는 알로이시오)는 1568년 3월 9일 이탈리아 북부 카스틸리오네(Castiglione)의 후작 페란테(Ferrante Gonzaga)와 마르타 타나 산테나(Marta Tana Santena) 사이에서 맏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부유하였으나, 다소 야만적이고 부도덕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신앙심 깊은 어머니는 깊은 사랑으로 알로이시우스를 키우려고 노력하였다. 알로이시우스의 아버지는 그가 군인이 되기를 원하였으나, 그는 이를 원하지 않았다. 그의 가정 교사였던 피에르프란체스코(Pierfrancesco del Turco)는 알로이시우스의 영혼과 정신을 길러 주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1577년 스페인의 왕 펠리페 2세(Felipe II, 1556-1598)의 부름을 받은 아버지는, 알로이시우스를 피렌체(Firenze)의 대공 프란치스코 데 메디치(Francesco de Medici) 궁의 시동(侍童)으로 보냈다. 2년 후인 1579년에 알로이시우스와 그의 동생 로돌포(Rodolfo)를 브레시아(Brescia) 지방 만토바(Mantova)로 옮겼다. 1581년 알로이시우스의 가족은 마드리드(Madrid)로 갔고, 알로이시우스는 펠리페 2세 궁정에서 왕자 돈 디에고(Don Diego)의 시동으로 지내면서 철학을 공부하였다. 그 후 왕자가 사망하자 1583년 8월 15일 알로이시우스는 예수회에 입회할 것을 결심하였다.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완강히 반대하며, 일단 이탈리아로 돌아가서 원하는 대로 하라고 아들을 설득하였다. 이탈리아로 돌아가자 아버지는 온갖 방법으로 알로이시우스의 마음을 돌려 보려고 애를 썼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1585년 11월 2일 로마(Roma)에 있는 예수회에 입회한 성 알로이시우스는 밀라노(Milano)의 예수회 분원에서 몇 달을 지낸 후 만토바에서 수련을 받았다. 이듬해 2월 15일 아버지가 사망하여 잠시 집에 들러 모든 일을 정리하고 돌아온 후 학업에 정진하였다. 그는 나폴리(Napoli)에 머물면서 형이상학을 공부하였고, 로마 대학에서 철학을 배웠다. 1587년 11월 25일 첫 서원을 한 뒤 곧바로 신학 공부를 시작하였다. 그를 가르치던 교수들 중에는 당시의 유명한 학자 바스케스(G. Vazquez, 1549-1604)가 있었으며, 훗날 성인이 된 로베르투스 벨라르미노(Robertus Bellarmino, 9월 17일)가 알로이시우스의 영성지도 신부였다.

성 알로이시우스가 신학을 공부한 지 4년째 되던 1590년 도시 전체에는 흑사병이 퍼졌다.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병자들을 돌보던 알로이시우스는 이듬해 3월 초 이 병에 전염되어 6월 21일 사망하였다. 그의 시신은 로마의 성 이냐시오(Ignatius) 성당에 안치되어 있다.

성 알로이시우스는 신중하고 분별력 있게 모든 일들을 잘 처리하는 뛰어난 학생이었다. 긍정적이고 관찰력이 탁월하였던 알로이시우스는 철학과 신학의 전 과목에 깊이 통달하였으며, 그를 가르쳤던 교수들에게도 인정받았다. 무엇보다도 그는 하느님에 대한 깊은 사랑과 신앙 안에서 어려서부터 정결을 지키며 살겠다는 굳은 의지를 갖고 있었고, 어떠한 반대에도 그 뜻을 굽히지 않았다. 따라서 그는 특별히 정결에 대한 은사를 받은 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또한 그는 수도 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악습들을 극복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으며, 자신의 자존심과 이기심을 이기기 위한 수련을 끊임없이 하였다.

성 알로이시우스는 1621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15세(Gregorius XV)에 의해 시복되었으며, 1726년 12월 31일 교황 베네딕투스 13세(Benedictus XII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그 후 3년 후 알로이시우스 성인은 젊은이들의 주보성인으로 선포되었다.(굿뉴스 성인전에서 퍼옴)

오늘 예수님께서는 아브람의 후덕함을 배우라고 하십니다.  창세기를 보면,  아브람과 롯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브람과 롯은 함께 유목생활을 하면서 서로가 함께 지내기가 힘들 정도로 부자가 됩니다. 한정된 땅에서 많은 양과 소들 그리고 천막을 치면서 함께 지내기가 힘들게 되면서 서로의 가축을 치는 목자들 사이에서 다툼이 일기도 합니다. 그러자 아브람이 조카 롯을 불러서 말합니다. 앞으로 펼쳐진 땅에서 네가 오른 쪽을 택하면 나는 왼쪽으로 네가 왼쪽을 택하면 나는 오른 쪽으로 가겠다고 하면서 선택권을 롯에게 줍니다. 

롯은 아브람의 제안에 한번의 양보도 없이 덥석 자신에게 주어진 선택의 기회를 이용해서 요르단의 온 들판을 제몫으로 선택하고 동쪽으로 옮겨갑니다. 언제나  아브람으로부터 혜택을 받아온 롯은 한 번쯤은 인사치레라도 양보를 할 만도 하지만 그러지 않습니다. 자신의 이익 앞에 삼촌 아브람의 마음이 바뀔까 즉시 선택을 합니다. 눈 앞의 이익에 어두운 소인배의 모습입니다. 아브람과 롯의 대조적인 모습을 보면서 상대를 우선적으로 배려하는 아브람의 덕을 배우고자 합니다.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앞자리에 앉기를 원하고 인사받기를 좋아합니다. 이러한 욕망을 절제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나의 의지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훈련이 필요합니다. 

살아가면서 자신을 내세우기란 참으로 쉽습니다. 자신의 능력으로 올라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남을 깎아내리거나 모함을 통해서 자신을 드러내고 내세우기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겸손한 사람의 특징은 자신을 고백할 줄 아는 것입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본질을 들여다 볼 줄 아는 사람이 겸손한 사람입니다. 자신을 아는 사람이기에 겸손한 사람은 현재 주어진 여건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감사함이 있기에 나눔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사랑의 출발점은 감사함에 있는 것입니다.

저의 주변에 있는 어떤 분은 남에게 베풀기는 좋아하지만 남으로부터 신세를 지는 것은 싫어합니다.  처음 얼마동안은 그분의 그러한 삶에 자세에 대해서 나에게도 필요한 삶의 모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얼마동안 함께 지내면서 한 가지 깨달은 것은 내가 남에게 베푸는 것에도 나의 능력의 한계내에서 이루어져야 하고  또한 내가 신세를 져야 할 일이 있으면 무작정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부족함을 고백하고 도움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타인의 도움이 필요함에도 그러한 도움을 받기를 거부하는 것, 과도하게 자신의 능력 이상으로 타인에게 부담을 주면서까지 남에게 베풀려고 하는 이 모든 것이 교만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자신에 대한 솔직한 고백과 도움이 필요할  때 겸손하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것도 용기가 있어야 하고 겸손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하시는 이 말씀에는 자신의 부족함에 대한 솔직한 인정과 고백이 전제된 청함이고 찾는 것이고 동시에 두드리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동시에 이러한 나의 부족함의 솔직한 인정은 청할 때에도 간절하고 겸손하게 청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웃에게 도움을 베풀 때에 참으로 겸손한 자세를 견지해야 합니다. 그 겸손한 자세란 바로 자기 위주의 사랑의 실천이 아닌 상대방의 입장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의 모범은 바로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셨던 그 사랑인 것입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아브람의 겸양의 덕을 배우고자 합니다. 그리고 남이 나에게 해주기를 바라는대로 먼저 내가 남에게 해주는 삶을 실천하고자 합니다. 알로이시오 곤자가 성인의 하느님에 대한 깊은 사랑과 자신의 악습을 고치기 위해서 노력했던 그의 삶을 본받는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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