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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6-11 04:43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사제 학자 기념일에(마태 5, 38-42) - 6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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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kchung6767
    조회 : 8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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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697

2016년 6월 13일 월요일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사제 학자 기념일에(마태 5, 38-42)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오히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마태 5, 39)

오늘은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사제학자 기념일입니다. 안토니오 성인을 주보성인으로 모시고 계시는 여러분 모두에게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성인은 잃어버린 것을 찾아주시는 성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굿 뉴스에서는 성인을 아래와 같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포르투갈 리스본(Lisbon)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페르난도(Fernandus)라는 세례명으로 세례를 받은 성 안토니우스(Antonius, 또는 안토니오)는 포르투갈 국왕 알폰소 2세의 궁중기사의 아들이었다. 성 안토니우스는 신앙심 깊은 부모의 영향을 받으며 자랐고, 리스본 주교좌성당 부속학교에서 교육을 받다가 15세 되는 해에 집 근처에 있던 아우구스티누스 참사 수도회에 입회하였다. 1212년에는 자신을 찾아오는 친구와 친척들을 피하기 위해 다시 코임브라(Coimbra)에 있는 성 십자가 참사 수도회로 옮겨 8년 동안 공부와 기도 생활에 전념하였다. 그 후 1219년에 사제로 서품되었다. 

1220년 1월 16일 모로코에서 순교한 다섯 명의 작은 형제회 순교자들의 유해가 성 십자가 성당으로 옮겨져 왔는데, 이때 자신도 순교자가 되겠다는 열정에 사로잡힌 그는 그 해 코임브라의 작은 형제회로 옮겨 안토니우스라는 수도명을 받고 곧바로 아프리카 선교사를 지원하였다. 그의 소망대로 무어인들에게 설교하기 위하여 모로코로 파견되었으나, 도착 직후 병으로 인하여 되돌아와야만 했다. 

그 후 1221년의 아씨시(Assisi)의 포르치운쿨라(Portiuncula)에서 개최된 작은 형제회 총회에 참석했다가 코임브라에서 조용히 은둔하며 고행 생활을 하던 그는 포를리(Forli) 근처의 몬테파올로(Montepaolo) 운둔소로 가게 되었다. 어느 날 코임브라 관구장인 그란치아노(Granziano) 신부와 함께 사제 서품식에 참석하기 위해 포를리로 갔는데, 마침 미사에서 강론할 마땅한 사람이 없어 성 안토니우스가 맡게 되었는데 이 자리에서 그는 설교가로서의 큰 능력을 발휘하였다. 

그래서 그는 카타리파가 성행하던 북부 이탈리아 지방과 알비파(Albigenses)가 성행하던 남부 프랑스에서 설교하라는 명을 받고 활발한 활동을 시작해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 그의 뛰어난 설교와 화술은 불같았고, 설득력이 있었으며 모여든 군중들을 매료시켰다. 그가 가는 곳마다 군중들은 구름처럼 운집하였다. 그는 작은 형제회의 첫 번째 신학 교수로 임명되었으나, 설교직에 더욱 헌신하기 위하여 공식적인 직책에서 면제해 줄 것을 간절히 바랐다고 한다. 

사람들을 개종시키고 고해성사를 주는 신부로서의 그의 성공은 가히 놀라울 정도였다. 프랑스에서 활동하던 중 1226년 10월 프란치스코 성인이 사망하자 이탈리아로 돌아와 이듬해 에밀리아(Emilia) 관구의 관구장 대리로 선출되었으나, 설교에 전념하기 위해 1230년에 사임한 뒤 파도바 수도원에 정착하면서 빛나는 업적을 남겼다. 파도바 전체를 완전히 개종시킨 그의 설교는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또한 그는 채무자, 옥에 갇힌 사람들을 석방하는 일을 비롯하여 가난한 이들을 돕고 이단자를 개종시키는 등 끊임없이 활동하였다. 

1231년 그는 수종 등을 겸한 열병으로 잠시 요양할 목적으로 캄포 산 피에로(Campo San Piero)로 갔으나, 병이 심해져 파도바로 되돌아오는 길에 베로나(Verona)의 아르첼라(Arcella)에 있는 클라라 수녀회에서 운명하였다. 이때 그의 나이는 불과 36세였다. 그의 유해는 현재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성당에 모셔져 있다. 그는 이례적으로 바로 다음 해 교황 그레고리우스 9세(Gregorius IX)에 의해 시성되었으며, 1946년에는 비오 12세(Pius XII)로부터 교회학자, 복음적인 박사로 선언되었다.

성 안토니우스의 수많은 기적 이야기와 설교 능력은 가톨릭 교회의 전설 중의 하나가 되었으며, 그를 능가할 만한 설교가가 나오기는 힘들 정도로 높이 평가해왔다. 그 당시 사람들은 안토니우스를 일컬어 ‘이단자들을 부수는 망치’, ‘살아있는 계약의 궤’라고 하였으며, 기적을 행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리고 17세기부터 잃어버린 물건을 찾을 때 안토니우스 성인에게 기도하면 곧바로 찾는다는 전설이 생겼다. 이는 어느 수련자가 허락없이 성인의 시편집을 가져갔다가 성인이 발현하여 돌려달라고 해서 그 시편집을 돌려주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하였다.

가난한 이들의 수호성인으로서 일생 그들을 위해 헌신했던 성인의 이름을 따서 19세기에 '안토니우스 성인의 빵'이라는 구호단체가 설립되어 오늘날까지 개발도상국의 가난한 이들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그를 그림으로 그릴 때에는 팔에 아기 예수님을 안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하는데, 그 이유는 한 방문자가 안토니우스 성인이 탈혼 중에 일어난 이 일을 기록했다는 이야기 때문이다.””(굿뉴스 성인전에서)

오늘 저에게 다가오시는 예수님께서는 ‘원수를 용서하는 것과 원수를 사랑하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어려울까?’하고 저에게 질문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은 악을 피하는 소극적인 삶을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악을 범할 기회자체를 없애는 적극적인 삶을 살아가야 함을 예수님께서는 알려주십니다.  

용서와 사랑은 떨어진 말이 아니라 함께하는 단어입니다. 단지 사랑이라는 큰 범주 안에 용서가 포함됩니다. 사랑에 훈련되지 않은 사람은 용서를 하기가 어렵습니다. 사랑해야 용서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용서해야 하는 원인을 근본적으로 없애주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몇번을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하고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 일곱번의 일흔 번이라도 용서해 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무한히 용서해 주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깨닫습니다. 용서의 질도 용서의 양도 한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이 전제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이 용서임을 깨닫습니다. 

내가 원하는 사람만 사랑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은 누구나 다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그것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잘못은 참으로 기쁘게 용서하고 받아들입니다. 관대하게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줍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랑과 용서는 그리스도인이나 비그리스도인이나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동태복수법을 폐기하시고 새로운 율법을 제시하십니다.  어떤 여기서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라고 하는 말씀은 악한 방법으로 어떠한 사람이 설사 맞선다 하더라도 나도 악한 방법을 복수해서는 안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5장 20절에서 말씀하시기를 ‘우리의 의로움이 율법학자들이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해야 한다.’(마태 5, 20)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율법을 지키는 것이 바로 의로움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던 당시의 사람들에게 의로움이란 율법을 잘지켜서 얻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잘 실천하는 데 있다는 것을 가르치십니다. 그래서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사이들을 능가하는 의로움은 바로 겉으로 드러내기 위해서 율법을 지키는 삶이 아닌 하느님의 뜻에 성실한 사람이 되어야 함을 가르치십니다. 

오늘복음은 예수님께서 이러한 말씀을 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누가 오른 뺨을 때리면 다른 쪽 뺨까지 내어 주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오른 뺨을 치는 것’은 오른 손잡이의 경우에는 손등으로 또는 주먹으로 상대방의 오른 뺨을 치는 것으르 말하는데 이것은 심각한 모욕이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말씀의 참 뜻은 우리가 그러한 모욕을 당하더라도 그 모욕에 동일한 방법으로 맞서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선으로 대하라고 합니다. 

그 다음에 예수님께서는 누가 재판을 걸어서 속옷을 가지려고 하면 겉옷까지 내어 주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 역시 악을 선으로 대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누가 천걸음을 가자고 강요하면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주어라고 하십니다. 이와같이 예수님께서는 악인들의 악한행위에 대해서 악한행위로 맞서기 보다는 선으로 맞서라고 가르치십니다. 이것이 바로 참된 ‘의로움’의 실천인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달라고 하든 꿀려고 하든 그냥 다 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회의 창립자이신 이냐시오 성인께서는 ‘예수회원은 죄인이다.’ 라고 예수회의 회헌에 정의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인정하면 우리에게 용서와 사랑이 필요합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죄인임을 인정하면 타인도 죄를 지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가 있습니다. 내가 용서를 받고 사랑받기를 원한다면 나의 이웃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서로가 서로의 부족함을 인정할 때 내가 미워하는 사람에 대한 용서함의 실천도, 사랑의 실천도 그렇게 어렵지는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악을 선으로 갚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압니다. 하지만 내가 죄인임을 인정하면 쉬워집니다. 자신을 죄인으로 인정한다는 것이 쉬운일 이 아닙니다. 자신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주님의 도우심입니다. 내 혼자만의 힘으로 할려고 하면 지치지만 내 안에 계시는 주님께서 하시면 못할 일이 없으신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내 안에 계시는 예수님은 침묵을 지키십니다. 하지만 우리가 기도를 하면  내안 계시는 예수님은 응답하십니다. 내 삶의 주인이 되어주십니다.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불가능이 가능으로 바뀝니다. 불안과 긴장의 연속이었던 삶이 이제는 평화와 감사와 찬미의 삶으로 바뀌게 됩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용서와 사랑을 실천하고자 합니다. 나의 모든 것을 주님께 내려놓고 주님께 의탁하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되는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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