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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12-22 06:50
   성지순례 다섯째날(금) 아우슈비츠를 거쳐서 헝가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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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kchung6767
    조회 : 2,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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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 다섯째날(금) 아우슈비츠를 거쳐서 헝가리로


순례단은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검은 성모님의 그림이 모셔져 있는 The Sanctuary of Jasna Gora 에로 갔습니다. 어제의 긴 버스여행에도 전혀 피곤함이 없이 모두들 제시간에 일어나서 호텔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본인이 제일 늦게 내려온 사람이었습니다. 하루에 두번씩 개방하는데 아침의 개방 시간은 새벽 6시였기 때문에 순례단은 조금 일찍가서 안내자로부터 간단하게 설명을 듣고 수도자들의 아침기도에 참여하고 그리고 개방하는 시간까지 나름대로의 기도시간을 가질 예정이었습니다. 

새벽까지 내리고 있는 눈은 온 세상을 흰색으로 덮고 있었습니다. 아직도 새벽의 어두움이 세상을 덮고 있는데 눈의 흰색이 이 어둠을 물리치고 있었습니다. 무릎까지 빠지는 눈길을 헤쳐가면서 경당으로 갔습니다. 인상적인 것은 경당에 들어가기 전 광장에 교황 요한 바울로 2세의 기도하시는 모습이 청동으로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눈 속에서 기도하시는 교황님의 모습이 표현할 수 없는 이상한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세상의 모든 어둠을 당신 혼자서 지고 계시다는 느낌이 문득 다가왔습니다. 

 경당에는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기도하기 위해서 나와 계셨습니다. 특히 많은 남녀 수도자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소임지로 출근하기 전에 이곳에서 아침기도와 더불어 미사를 봉헌하고 자 오신 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평신도들의 행렬도 끊이질 않았습니다. 아마도 컴뮤니케이션 상의 작은 오해가 있었던지 수도자들의 기도는 이곳에서 있지 않았습니다. 옆의 대 성당에서는 다섯시 삼십분에 미사가 있었습니다. 순례단이 나름대로 자유롭게 기도를 바치고 있는 동안 본인은 대성당의 미사에 참여했습니다. 비록 언어는 달랐지만 미사의 모든 내용은 이해할 수가 있었습니다. 갑자기 로마에서 신학을 공부하는 동안 머물렀던 기숙사 Collegio del Jesu와 Jesu 성당이 떠올랐습니다. 특히 아침 미사는 당시에 Jesu성당의  새벽미사를 참여할 때의 그러한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미사를 마치고 경당으로 갔을 때 시간이 되어서 검은 성모님의 그림을 개봉하는 예식을 시작했습니다. 웅장한 나팔소리와 함께 검은 성모님께서 상체에 아기 예수를 안고 계시는 모습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하였습니다. 곧이어서 사제단과 복사단이 입장하였습니다. 미사가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가 조금 시간이 흐르면서 비로소 그림의 개봉과 동시에 미사를 봉헌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름다운 음악과 전례가 일치하면서 참으로 천상의 잔치에 참여하고 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가 있었습니다. 순례단 모두는 이 미사를 통해서 다시금 미사의 참된 의미를 깨닫을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폴란드의 수호성인이시고 모든 폴란드인들의 여왕으로 통하시는 성모님께서 얼마나 이 나라와 국민들을 사랑하셨는지 여러가지 예화들을 통해서 알 수가 있었습니다. 이 검은 성모님의 그림에 대해서 앞서도 간단하게 설명을 했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을 하면 이렇습니다. 

먼저 전설에 의하면, 이 검은 성모님의 그림은 루가 복음사가가 성모님께서 돌아가신 후 예루살렘 여인들의 청을 받아 들여서 성가정의 식탁의 나무판을 이용하여 그린 그림이라고 합니다. 반면에 폴란드의 과학자들은 이 그림은 비잔틴 시대의 삼, 사세기 경의 작품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아우슈비츠로 가는 길에 우리는 다시 한번 검은 성모님께서 계셨던 그 성당과 수도원을 방문하였습니다. 우리를 안내해 주시던 머리가 조금은 벗겨지신 수사 신부님께서는 위에서 언급한 내용들을 간단하게 설명해 주시고 우리 순례단을 성당 삼층에 있는 귀중품 보관소 안내해 주었습니다. 많은 기적에 감사하고 혹은 순수한 신앙심으로 검은 성모님께 바친 신자들의 정성과 유명인사들이 기증한 황금과 보석들로 장식된 제기들과 여러가지 귀중품들이 참으로 다양하고 많았습니다. 

이곳을 방문하고 기념품 판매소에 들렀다가 우리는 세계현 대사의 가장 부끄러운 부분의 핵심이었던 아우슈비츠 캠프를 방문하였다. 나치의 인종말살 정책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인간의 잔인성과 악함이 어디까지 갈 수 있나를 적나라 하게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동시에 동료죄수를 위해서 목숨을 내어 놓았던 막스밀리안 콜베 신부님의 무한한 인간에 대한 사랑을 개스와 잡초가 뒤덮여 있는 곳에서 찾을 수가 있었습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3개의 큰 그룹으로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우리가 들어가는 입구에는 독어로 ”Arbeit macht Frei.”(일은 자유를 준다) 이렇게 쓰여져 있었습니다. 아마도 더 많은 노동을 강요하기 위해서 위의 슬로건을 입구에다 내어 걸었나 봅니다. 아무런 표정 없이 힘없는 목소리로 기계같이 설명하는 중년 여자 안내원의 그 모습이 바로 당시의 고통과 억압에 찌들린 사람들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것 같았습니다. 이 중년 여인은 아마도 당시에 이곳에서의 참된 자유는 바로 죽음에서 온다’라고 달리 쓰여져 있어야 하는 말일 것이라고 냉소적으로 이야기 했습니다. 

우리 순례단을 안내해 주는 중년의 여인은 당시의 박해를 그대로 간직한 사람처럼 목소리에 너무나 힘이 없어서 설명을 알아듣기가 참으로 어려웠습니다. 당시의 수용소의 참상을 들으면서 함께하고 있던 10살짜리 앤드류가 이러한 설명과 인간의 극한적인 잔인함을 듣고 목격하면서 충격이나 받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순례단과 함께 설명을 듣는 것을 포기하고 다음 동으로 옮길 때 나는 안드레아와 화장실을 간다는 핑계를 순례단의 대오에서 이탈하여 기념관의 바깥에서 안드레아와 나와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눈을 보고 좋아하는 안드래아의 순진한 모습을 보면서 나도 어렸을 때 어머니의 큰 사랑과 보호 안에서 저와 같은 순진성을 갖고서 밝게 지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으로 어둠의 시절을 보내면서도 잘못된 길을 가지않고 지금의 나로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 참으로 성모님께서 부모님의 사랑을 대신해 주셨구나 하고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방문을 끝내고 순례단은 이제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를 향해서 떠났습니다. 약 두 시간 동안의 여정이었습니다. 헝가리 국경을 통과 하면서부터 우리의 기사인 죠오지는 자기의 나라에 들어와서 인지 신이나기 시작하였습니다. 호텔에서 저녁식사를 하는 것으로 알고 호텔 식당에서 모여 있다가 착오임을 깨닫고 외부의 예약된 식당을 찾아서 떠났습니다. 쉽게 찾을 수 있을줄 알았던 그 식당을 찾는데 거의 한 시간을 허비하였습니다. 하지만 순례단의 어떤 분도 이에 대해서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겉보기와는 달리 우아하고 조용한 분위기가 있는 그러한 식당이었습니다. 포도주를 곁들인 헝가리 음식을 아주 맛있게 재미 있는 농담을 하면서  먹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호텔에서 감사미사를 봉헌하고 우리 순례단은 내일의 일정을 위해서 각자 잠자리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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