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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4-30 14:16
   신앙의 눈으로 보여지는 구원의 역사(마태 13, 54-58) - 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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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kchung6767
    조회 :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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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348

2015년 5월 1일 금요일

신앙의 눈으로 보여지는 구원의 역사(마태 13, 54-58)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마태 13, 57)

오늘 아침에 저엑 다가오시는 예수님은  겸손한 노동자의 아들의 모습입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복음서의 시작에서 예수님의 족보를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위대하신 분의 가계도를 보면,  인간의 눈으로 볼 때 참으로 화려한 분들, 세상적인 성공을 이루고 살아가신 분들의 집합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가계도를 보면, 우리의 생각하고는 너무다 다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성공한 사람들만 있는것이 아니라 세상적인 눈으로 보면, 실패한신 분들도 이름들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인간의 전 계층을 아우르는 분이십니다. 

따라서 하느님께서 이루어 가시는 구원의 역사을 보면,  인간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가 어려운 면들이 있습니다. 이성의 눈이 아닌 신앙의 눈으로 보아야 만이 해석이 됩니다.

공자가 제자인 자공과 자로를 데리고 여행을 할 때였습니다. 어느날 길을 잃고 산중에서 헤매다가 작은 오두막을 발견하였습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오두막에 들어선 공자 일행은 늙은 집주인으로부터 음식을 대접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집주인은 연신 손등으로 콧물을 훔치면서 좁쌀 죽을 끓여 이 빠진 그릇에 담아내는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은 그 모양을 보고 입맛이 떨어져 음식에 손도 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공자는 훌훌 입김을 불어대며 아주 맛있게 음식을 먹었습니다. “선생님, 음식이 그렇게 맛있습니까?” 궁금해진 자공이 묻자 공자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너희들은 늙은 주인의 더러운 콧물과 이 빠진 그릇을 보았을 뿐, 손님을 대하는 아름다운 성의와 친절은 보지 못했구나 사람은 대접할 줄도 알아야 하지만 대접받을 줄도 알아야 하느니라.” 

아무리 화려한 접시에 담긴 좋은음식이라 할지라도 만드는 사람의 정성이 담겨 있지 않다면, 또 그 정성을 느끼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없다면 아무런 맛도 느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렇듯 사람은 자신의 무게에 따라 대접을 받는 것입니다. 스스로 대접받을 준비가 되어있다면 누군가 반드시 당신을 대접할 것입니다. 

당시의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메시아가 가난한 목수의 아들의  모습으로 오리라는 것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 분을 구세주로 모시기 보다는 신성을 모독하는 자로 간주하여 혹독한 박해를 가했던 것입니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마태 13, 57) 는 그 말씀이 그대로 적용이 돔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들은 외적으로 드러나는 모습으로 한 인간을 판단하는 우를 저질렀으며 그러한 실수는 종국에는 그 분을 정치범으로 몰아 십자가위에서 죽였던 것입니다. 이들의 그러한 행위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아우구스띠노 성인의 말씀에서와 같이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기 때문일 뿐만 아니라 공자의 말씀대로 대접하는 사람의 참된 정성을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엇습니다. 즉 우매한 제자들은 대접을 받을만한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구세주께서 오시는 모든 과정을 자세하게 살펴 보면서 한 가지 신비를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하느님의 섭리는 인간의 이성으로써는 파악하기가 힘들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이성 저밖에 계시는 그분의 논리를 깨닫기 위해서는 획기적인 사고와 삶의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오심’과 ‘떠나심’ 속에 현존하는 하느님의 뜻과 인간의 뜻의 혼재를 정확하게 분별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이 지혜는 하느님과의 지속적인 만남을 통해서 만이 가능한 지혜입니다. 

목수인 아버지에게서 메시아가 온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인간은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의 무능력함을 보지만 그러한 인간의 눈으로 본 하느님의 무능력함이 바로 당신의 구원의 역사가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확장되는 것을 보게 하는 것입니다. 바로 지금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그 이유가 ‘하느님의 무능력 함’에 기인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인간의 눈으로 볼 때는 가난하고 무능력한 목수이지만 그 분의 마음을 보시는 하느님께서는 겉으로 드러난 화려함을 추구하는 인간의 고정관념을 깨뜨리시는 것입니다. 선택받은 사람들에게만 구원이 제한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있던 이들에게 구원은 전 인류에 열려져 있다는 사실을 요셉성인을 통해서 우리에게 깨닫게해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요셉성인의 성실함과 배려함이 나의 삶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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