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 메인홈 로그인 | 메일재인증 | 업데이트 알림 | 회원가입 | 관리자 문의 |  사이트맵 |  5 (회원 0)  
ApacheZone
등록된 배너가 없습니다.
등록된 배너가 없습니다.
Home >  강론및기고 >  매일말씀묵상
 
작성일 : 13-10-25 09:06
   성지 순례기-14
트랙백
 글쓴이 : 정건석
    조회 : 3,217  
이글을 내twitter로 보냅니다 이글을 facebook으로 보냅니다 이글을 미투데이로 보냅니다 이글을 다음요즘으로 보냅니다  


성지 순례기-14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라 그것은 우리의 바람이었지…” 로 시작하는만남’이라는 유행가가 얼마 전에 한국에서 대 히트를 한적이 있다. 곡도 곡이지만 어쩌면 가사가 우리의 마음을 그대로 잘 표현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순례단과 파리 남부의 어느 교구의 주교님을 만날 수 있는 이러한 기회도 우연이라기 보다는 어쩌면 우리의 간절한 바람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소화 데레사께서 탄생하신 작고 조용한 알랑숑(Alen?on)에 도착한 것은 아침 10시가 다 되어서였읍니다. 그 녀가 탄생하신 집을 성지화하여 박물관과 조그마한 성당과 수녀원으로 꾸며 놓았읍니다. 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할 수 있도록 청하여 어렵게 허락을 얻어 미사를 봉헌할 수 있었읍니다.

미사를 시작하자 마자 허름하게 옷을 입은 한 가늘고 보통 보다는 조금은 키가 큰 평범하게 보이는 한 남자가 성당에 들어 와서 우리 순례단과 함께 미사에 참여하기 시작 하였읍니다. 처음에는 이상하게 생각을 하다가도 그냥 미사에 집중 하였읍니다. 미사를 마치고 제의방에서 옷을 갈아입고 있는데 갑자기 어떤 외국인이 고백 성사를 보고 싶어 한다고 율리아노 형제님께서 알려 주었습니다. 영어든 이태리어든 상관이 없다니까 일단 편안한 마음으로 그 분을 제의방으로 모셔 오게 하였읍니다.

함께 미사에 참여했던 바로그 분이었읍니다. 고백을 듣고 있는데 이 분의 고백의 내용이 보통 평범한 사람의 고백이 아니어서 당신의 신분을 확인하였더니 이 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의 주교라고 당신의 신분을 밝히셨읍니다. 고백성사를 마치고 당신의 신분을 우리 순례단에게 밝혀도 좋다는 허락을 받고서 성당에서 기다리던 순례단에게 지금을 고백성사를  하신 분이 바로 주교님이시라고 알려드렸읍니다. 순례단 모두는 이런 곳에서 주교님을 뵙게 될 줄이야 하며 기뻐하였읍니다. 주교님으로부터 특별한 축복을 받고 우리 모두는 함께 사진을 촬영하는 영광도 갇게 되었읍니다.

주교님께서는 휴가차 이곳에 들리셨다가 내일부터 시작하는 사순절을 준비하기 위해서 고백성사를 보고 싶어하셨는데 이곳에 오면 신부가 틀림없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서 이곳에 들렀었는데 마침 우리를 만나게 되어서 기쁘다고 말씀하셨읍니다

잔잔한 미소와 평범한 복장 등을 통해서는 어떠한 권위도 발견할 수가 없었읍니다. 교회의 어른으로써 참으로 겸손의 모범을 우리 순례단에 보여주신 것은 길이 잃어버릴 수 없는 교회 어른의 참모습이었읍니다어쩌면 이 분의 모습은작은길’을 자신의 고유한 영성으로 평생을 살아가셨던 소화 데레사 성녀의 삶을 더욱 구체적으로 보는 것 같았습니다. 이러한 좋은 기회를 허락하신 주님께 그리고 소화 데레사 성녀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데레사 성녀에 대한 순례단의 강한 열망과  주교님의 열망이 절묘하게 조화를 하느님 안에서 이룬 만남이었을 뿐만 아니라  순례단은 바로 주교님을 통해서 그녀의 삶을, 영성을 만나게 해 주시는 하느님의 깊은 사랑을 체험하게 되었는 지도 모릅니다.

성녀는 이곳에서 1873 1 2일에 루리 마르와 겔리 게랭 사이의 아홉 자녀 중 막내로 태어 나셨습니다수도원에 입회를 해서 수도자가 되기를 원했으나 라틴어를 모른다는 이유로 혹은 다른 알 수 없는 이유 등으로 해서 거절 당한 아버지와 그녀의 어머니의 결혼 생활은 이들의 자녀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성녀의 삶은 세 시기로 구분할 수 있는데 그녀는 자서전에서 자신의 세 시기를 , 어머니가 죽기 직전까지의 행복했던 어린 아기의 시절과 리지외로 이사한 후 외로움과 쓸쓸함 속에서 혹독한 세심증 속에서 했던 8년 간의시련의 겨울’ 시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1886-1888년의 깊은 내적인 회심의 경험을 통해서 수녀원에 입하게 되는 시기 등으로 구분 하였읍니다.

성녀는 똑똑하고 명석하였지만 수줍움이 많았을 뿐만 아니라 소극적인 성격 탓으로 학교 생활에는 잘 적응하질 못했었읍니다

하느님을 위해 고통 당하고 죄인의 회개를 위해 헌신하고 싶은 열망을 지녔던 그 녀는 14세에 이미 두 언니가 수녀로서 살고 있던 리지외의 맨발의 가르멜  수녀원에 입회하기를 원하였으나 수녀원에서는 6년을 기다리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1년 후에 그녀는 마침내 수녀원에 입회하게 되었습니다. 그 녀의 수도자로써의 삶은 참으로 평범한 삶이었습니다. 그녀 수녀원 내부에서 일어나는 내부적인 갈등에는 전혀 신경을 써질 않고 기도 생활에만 매진하였습니다. 아마도 당신이 추구했던 영적인 삶의작은 길’은 하느님 만을 향하는 바로 그길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갑자기 정 채봉 선생님의가장 무서운 감옥’이라는 시가 생각이 납니다.

 

가장 무서운 감옥

 

그는 캄캄한 감옥에 갇혀 있었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벽이었다.

문도 없었다.

손바닥만한 창이라도 있을법한테 창도 없었다.

그는 소리 소리 질렀다.

주먹으로 벽을 쳐도 보고, 발로 차도 보았다.

아니, 머리로 받아도 보았다.

그러나 감옥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누구 하나 들여다 보지도 않았다.

“아아”

그는 기진맥진하여 쓰러졌다.

이때 어디에선가  들려 오는 소리가 있었다.

“나오너라”

그는 대답했다.

“어디로 나갑니까? 사방이 벽인데요”

“네가 둘러친 벽이면서 뭘 그러너야?

벽을 허무는 것도 너 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내가 언제 이런 감옥을 만들었단 말입니까?

나는 결코 이런 무서운 벽을 만든 적이 없습니다.

도대체  감옥 이름이 무엇입니까?”

 

 

“’나’라는 감옥이다. 지금 너는나’라는 감옥에

갇혀 있는 거야”

“어찌 이런 감옥이 생길 수 있다는 말입니까?”

“너만 아는 너의 이기주의 때문이지”

그는 갑자기 슬퍼졌다.

그는 두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 한참 울다가

눈을 떴다.

 

그러자 보라, 소리도 없이 무너져 버리고 없는벽을

그는 광명 천지에 우뚝 앉아 있는 자기를 지켰다.

 

수도자의 삶을 걸으면서도, 그리스도인의 삶을 걸으면서도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으로 우리 자신의 감옥의 벽을 높고 넓고 튼튼하게 쌓아 가고 있습니다. 자신이 허물어 뜨리고 싶어도 허물지 못하는 하지만 나 만이 허물어 버릴 수  있는 그러한 벽을 말입니다. 한 평생 주님 만을 생각하고  그분을 향한좁은길’을 걸으가신 성녀가 너무도 가슴 깊이 다가오는 것은 이기심 때문에 주님을 잃고 살아가는 경우가, 혹은 의도적으로 주님을 잊고자 노력하는 삶을 살아왔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글을 내twitter로 보냅니다 이글을 facebook으로 보냅니다 이글을 미투데이로 보냅니다 이글을 다음요즘으로 보냅니다  

 
   
 

굿뉴스 Diocese of Austin 마리아사랑넷
이용약관 |  개인보호정책 |  광고안내 |  온라인문의 |   로그인  |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Korean Catholic Church at Austin, Texas | 6523 Emerald Forest Drive, Austin, TX 78745 | Phone:(512) 326-3225
Copyright ⓒ www.kcc-austin.org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