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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10-23 03:14
   세상에 불을 지르러 오신 예수님 (루카 12, 49) - 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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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kchung6767
    조회 :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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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197

2014년 2월 23일 목요일

세상에 불을 지르러 오신 예수님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루카 12, 49)

오늘 아침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세상을 불을 지르기 위해서 오셨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성경에서 ‘불’은 성령, 사랑, 심판 등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불’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통해서 인간에게 보여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의미함을 알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사랑을 전달하기 위해서 오셨다는 뜻이 될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죄와 죽음에 물든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보냈댜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하느님의 사랑을 인간은 받아들이지도 깨닫지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성수대교가 무너진지도 20년이 지났습니다. 이런 인재에 의한 사고가 있었슴에도 불구하고 한국에는 인재에 의한 사고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부끄럽게도 사고 공화국이라는 말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됩니다. 성수대교가 떨어지던 그 날 저녁 저는 로마에서 한국에 도착한 날이었습니다. 저녁에 도착했지만 이 사고로 인한 교통체증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인간의 어리석음은 어디에 있겠습니까? 저는 그 순간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이 다리가 무너지기 전에 이 다리를 건넜던 사람들은 아무런 걱정도 없이 건넜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다리가 무너지고 난 뒤에 다른 다리를 건너서 돌아오는 사람들은 튼튼한 다리를 건너면서도 이 다리도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건넜을 것입니다. 정작 무너질 다리를 건널 때는 전혀 걱정하지 않다가 무너지고 난 뒤에는 무너지지 않는 다리를 건너면서도 무너질까 걱정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전달하기 위해서 오셨던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인간의 어리석음 역시 이와 같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어리석은 인간을 두고서 예수님께서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 라고 안타까워 하시면서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삶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보여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알아보지 못하는 인간들의 굳은 마음과 교만한 마음을 보시면서 안타까워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이 저의 마음 속 깊이 전달되어 옵니다. 

인간은 진실을 두고서도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진실을 받아들이는 사람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으로 나누어집니다. 인간에게 만이 일어날 수 있는 분열입니다. 자신의 이해가 진실임을 알면서도 진실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평화를 주러 오신 분이십니다. 하지만 이를 바라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10장 6절 “그 집에 평화를 받을 사람이 있으면 너희의 평화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고,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를 통해서 알 수가 있습니다. 평화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기에 평화를 주러오신 예수님께서 분열을 일으키러 오신 것처럼 보여지는 것입니다. 의도적으로 진실을 부정합니다. 

의도적으로 평화를 부정하고 진실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나와 동떨어진 사람이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도 때와 장소에 따라서 이런 부정의 삶을 살아왔던 사람들이고 지금도 그러한 삶을 살아가고 있슴을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거짓을 덮기 위해서 예수님을 죽일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지셔야 하는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상에서의 죽음이 바로 세례입니다. 가장 완벽한 세례입니다. 이러한 죽음이 세상에 죄악을 드러내게 합니다. 이러한 죽음이 이제 세상의 거짓과 죄를  없애 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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