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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10-14 04:27
   겉과 속이 일치하는 삶 (루카 11, 39-40) - 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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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kchung6767
    조회 : 1,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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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189

2014년 10월 14일

"정녕 너희 바리사이들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너희의 속은 탐욕과 사악으로 가득하다. 어리석은 자들아, 겉을 만드신 분께서 속도 만들지 않으셨느냐?”(루카 11, 39-40)

대부분의 피정의 시작은 ‘하느님의 사랑’이라는 주제를 갖고서 시작합니다. ‘하느님이 사랑이시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다 받아들이는 정의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분이 참으로 나를 사랑하시는 가에 대해서는 받아들이기를 어려워 합니다. 스스로 그러한 사랑에 대한 체험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그분의 사랑을 우리가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은 남은 나의 삶의 첫날’ 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오늘이 그렇게 귀중한 날임을 의식하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자신의 삶의 과거가 존재하였고 현재가 있고 당연히 미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이 사랑이신 것은 우리의 과거를 당신의 사랑으로 덮어주시고 새로운 시작을 하도록 초대하시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하느님의 사랑을 깊이 체험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이 살아온 삶에 대한 진지한 반성이 전제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반성을 통해서 자신이 참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받기에는 자격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될 때, 우리를 과거의 엄청난 족쇄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서 오시는 당신의 아들을 통한 하느님의 엄청난 사랑을 인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심을 우리는 라틴어로 incarnatio라고 표현합니다. 안에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in과 육체라는 말의 caro와 태어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natio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를 ‘신이 육체를 입고 태어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느님이신 분께서 인간의 육체를 입고서 태어난다는 것의 의미를 구구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인간에 대한 그분의 무한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이 분의 무한한 사랑이 바로 인간이 지니고 있는 극복할 수 없는 죄와 죽음의 굴레에서 해방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이승에서의 삶에 갇혀있던 우리의 삶의 영역이 저승 즉 영원에까지 확장되는 것을 말합니다. 인간이 갖고 있는 겉과 속의 불일치를 이제는 일치의 모습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와 같은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셨기 때문에 그분에 대한 깊은 친근감과 일치감을 갖게 됩니다. 동시에 언제나 우리에게 두려운 존재로만 여겨졌던 하느님께서 이제는 당신의 아들을 통해서 우리 모두가 아바, 아버지라고 고백 할 정도로 친근한 존재로 다가오십니다. 

오늘 복음말씀이 가슴 깊이 다가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것을 창조하신 분인데 우리는 겉만 소중히 생각하고 가꾸어 갑니다. 내면의 모습은 보지를 못하니까 겉모습의 화려함으로 내면의 추함을 덮어버릴려고 합니다. 

하루를 새롭게 시작하면서 나에게 다가오시는 예수님을 바라 봅니다. 아버지이신 하느님을, 우리와 같은 육체를 입으신 예수님을, 그리고 지금도 우리의 부족함을 채워주시고 우리를 아버지께로 인도해 주시는 성령님을 깊이 느껴 보고자 합니다. 비록 인간의 눈과 지성으로는 완전하게 볼 수도 알 수도 없는 분들이지만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당신의 아들이 취하신 겸손과 사랑을 실천하면서, 우리를 주님께로 이끌어 주시고 진리에 대한 완벽한 가르침을 주시는 성령께 온전히 의탁하면서 아버지의 크신 사랑을 체험 하고자 합니다.

이제는 과거와 같이 연례행사적인 시작과는 달리 좀더 진지하며 구체적으로 시작하고자 합니다. 과거로부터의 해방이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는 필수적임을 명심하면서 이제는 그와 같은 삶을 살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집니다. 타인의 눈을 의식해서 자신의 겉모습의 치장에 정성을 쏟았던 나를 반성합니다. 

하느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인간의 눈을 의식하고 그 눈의 노예로서 살았던 삶에서 이제는 내 삶의 외면과 내면을 하느님께서 창조하실 때의 그 깨끗함으로 채워나가는 삶을 살아가고자 합니다. 하느님께서 주인이시고 목적이 되시는 삶을 살아가고자 합니다. 시간의 소중함을 마음 속 깊이 간직하면서 오늘 하루를 ‘생의 마지막 날’처럼 동시에 ‘오늘을 나의 남은 삶의 첫 날’ 처럼 하느님의 사랑을 마음 속 깊이 간직하면서 그 사랑이 이웃에게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를 갖게 하는 그러한 삶을 살아가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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