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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8-08 04:01
   십자가를 지는 삶 (마태 16, 24-25) - 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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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kchung6767
    조회 : 2,6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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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134

2014년 8월 8일 금요일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 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마태 16, 24-25)

다시금 이글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여전히 저의 삶의 자리를 떠나 있지만 그래도 이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저를 움직입니다. 사랑은 이런 것인가 봅니다. 그냥 움직이게 합니다. 한국을 다녀오면서 많이 놀랐습니다. 이 글을 읽어 주시는 분이 너무나 감사하게도 많음을 알았습니다. 저의 글이 다른 사람에게 읽혀지고 있다는 사실 더욱 저를 모르시는 많은 분들이 읽고 계시다는 사실이 감사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사랑의 가족입니다. 이기적이고 세상적인 목적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아니기에 저의 부족함을 나누어도 사랑으로 감싸주심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빨리 만나고 싶었습니다. 한국에서의 만남의 기쁨을 빨리 나누고 싶었습니다. 가식과 포장으로의 만남이 아닌 하느님 안에서 있는 그대로의 만남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시애틀에 와서 여러분과 말씀을 나눕니다. 

오늘 만난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십자가를 지시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는 삶’을 실천하고자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오늘의 예수님은 십자가의 예수님이십니다. 당신께서는 지시는 그 십자가가 나에게로 다가옵니다. 당신을 따르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에게 십자가는 피할 수 없는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당연히 해야하는 일을 피할려고 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해서는 안되는 일을 할려고 합니다. 분별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 분별은 ‘듣는 마음’에서 오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하느님께 청했던 것이 바로 이 ‘듣는 마음’을 통해서 하느님의 지혜를 찾았던  것처럼 우리 역시 이 ‘듣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무엇을 듣는 것입니까?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뒤를 따르기를 원하는 사람은 자신을 버리고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자신을 버린다.’는 말이 어려운 말입니다. 무슨 의미일까 함께 생각해 봅니다. 인간은 누구나 세상 안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본능적으로 세상의 친구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세상적인 출세와 부귀와 명예와 권력을 추구하면서 살아갑니다. 세상의 논리가 바로 세상적인 출세의 논리입니다. 이러한 세상적인 논리가 또 다른 ‘나’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나’를 버리라는 것입니다. 바로 그러한 나를 버리는 것이 바로 나의 십자가인 것입니다. 익숙한 것으로부터의 탈피입니다. 서투른 것에로의 나아가는 삶입니다. 바오로 사도께서 갈라티아 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 는 것입니다(갈라 2,20).”하고 말씀하십니다. 

내안에서 ‘세상의 논리’가 살다가 이제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는 삶입니다. 지금은 서투르지만 살다보면 어느 순간에 익숙해 지는 삶입니다. 오로지 ‘선택과 결단’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어서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 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10장 39절의 말씀의 반복이기도 합니다. 이 말씀은 달리 표현하면 세상적인 것을 추구하면 영적인 자아가 죽고 영적인 자아를 추구하면 세상적인 자아가 죽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영적인 자아를 추구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인데 이 영적인 자아를 추구하기 위해서 세상적인 자아를 버리는 것이 바로 십자가를 지는 삶인 것입니다. 사람의 생명은 이 세상보다도 귀하고 중요함을 깨닫습니다.

내가 온 세상을 얻는다 해도 나의 목숨을 잃어버린다면 무슨 삶의 의미가 있겠습니까? 참 진리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영원을 살기 위해서 세상을 버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세상적인 것의 포기가 모든 것의 포기가 아닌 필요한 만큼 가지과 나머지는 나누는 지혜인 것입니다. 가짐과 포기는 떨어진 단어가 아닌 함께가는 단어입니다. 소유와 비움의 천상적인 배합이 바로 참 평화와 행복의 길이며 영원을 사는 길임을 깨닫습니다. 세상보다도 귀한 우리의 생명을 세상때문에 포기하는 어리석음으로 살지 않도록 오늘도 주님의 지혜를 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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