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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10-31 04:59
   비겁한 종교인이 아닌 용기있는 신앙인의 삶 (마태 14, 3) - 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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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kchung6767
    조회 : 1,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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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204

2014년 10월 31일 금요일

비겁한 종교인이 아닌 용기있는 신앙인의 삶

"예수님께서 율법 교사들과 바리사이들에게,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는 것이 합당하냐, 합당하지 않으냐?”(마태 14, 3)

오늘 나에게 다가오시는 예수님께서는 “땅을 보고 살지 말고 하늘을 보고 살아라!”하고 말씀하십니다. 비겁한 종교인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참 신앙인으로 살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느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의  지도자 가운데한 사람의 집에서 음식을 드실 때 일어난 일입니다. 그런데 그곳에는  율법교사들과 바리사이들이  함께 있었습니다.  이들이 예수님을 지켜보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들이 왜 예수님을 지켜보고 있었는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지는 않지만 덧붙여서 그 자리에 수종을 앓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고 하는 보도를 통해서 우리는 그 이유를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던 때는 ‘어느 안식일’입니다. 

따라서 이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의 규정을 잘 지키는가를 확인하기 위해서 어쩌면 의도적으로 수종을 앓고 있는 사람을 예수님의 눈에 잘 띄는 예수님 앞에 데려다 놓았을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합니다.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리기 위한 고도의 전략이 개입되어 있슴을 알 수가 있습니다. 

여기서. 수종이란 근육조직에 물이 차서 그 물 을 빼내야 하는 병입니다. 즉, 간이나 콩팥 같은 데가 좋지 않아서 세포조직 사이나 위나 늑막 같은 곳에 비정상적으로 물이 고이는 증세를 말합니다. 당시 랍비들은 그 병을 부도덕한 생활 때문에 생기는 병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비록 본문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아마도 바리사이들과 율법교사들은 예수님께 환자를  안식일에 고쳐주실 것인지를 물었을 것입니다. 아니면 말로 표현하지는 않았어도 당시의 그들의 표정과 주위의 분위기는 완전히 "자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하며 예수님의 반응을 기다리는 것이었음이 틀림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율법 교사들과 바리사이들에게,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는 것이 합당하냐, 합당하지 않으냐?” 하고 물으셨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질문은 6장 9절  “내가 너희에게 묻겠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의 질문과 뜻도 비슷하고 말투도 비슷합니다. 지금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13장 14절 “회당장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셨으므로 분개하여 군중에게 말하였다. “일하는 날이 엿새나 있습니다. 그러니 그 엿새 동안에 와서 치료를 받으십시오. 안식일에는 안 됩니다.”에서처럼 예수님이 안식 일에 병을 고치는 것에 대해 문제를 삼으려고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도 그들의 속마 음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먼저 질문을 하시는 것입니다. 6장 9절에서는 안식일에 좋은 일, 목숨을 구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병을 고쳐 주는 것이 합당하냐고 물으십니다.  '합당하냐, 합당하지 않으냐?' 라는 질문은 율법 에 맞느냐, 어긋나느냐? 라는 질문입니다.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리기 위해서 계획했던 모든 일들이 부메랑이 되어서 바리사이들과 율법교사들에게 다시 돌아갑니다. 그들은 "합당하다"고 답할 수도 없고 "아니라"고 답하기도 곤란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합당하다"고 대답했다가는 율법을 정면으로 부인하는 것이 될 것이고, "아니다"라고 대답했다가는 안식일이라도 사람들이 우물에 빠졌을 경우에는 구해야 한다는 세부규정을 무시하는  경우가 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위기가 기회가 되는 순간입니다. 

예수님을 빠뜨리려고 파놓은 함정에 순식간에 자기들이 빠지게 된 것입니다. 율법교사들과 바리사이들이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 없었다는 뜻입니다. 동시에 이 말은  예수님의 말씀이 옳다는 것을 알면서도 인정하지  못하는 용기없는 사람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자신의 잘못을 순간적으로 덮을려고 하는 비겁한 지식인의 모습인 것입니다.

참된 용기는 자신의 부족함과 잘못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순간을 살기 위해서 영원을 죽이는 어리석은 사람의 모습이 나의 모습이 아니기를 진심으로 기대합니다. 그래서 매 순간 하느님께 지혜를 청하는 삶을 살아가고자 합니다. 바로 지금 하루를 시작하면서 하늘을 바라봅니다. 나에게 다가오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하루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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