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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11-04 04:15
   하느님의 초대를 거절하는 사람들 (루카 14, 15-24) - 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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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kchung6767
    조회 :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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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207

2014년 11월 4일 화요일

하느님의 초대를 거절하는 사람들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루카 14, 14)

오늘 아침에 나에게 다가오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봅니다. 세상적인 보상을 기대하는 삶을 살아가지 말라고 당부하십니다.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면서 기대하는 것은 하느님의 축복입니다. 하느님의 축복을 받는 삶의 조건은 이기심이 없는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보답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실천하고, 그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함께 기뻐하는 것이 바로 하느님의 축복이고 하늘나라에 보화를 쌓은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예수님께서는 한 걸은 더 나아가서 우리에게  원수까지도 사랑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왜 원수를 사랑해야 하고 기도를 해야 하나에 대해서 생각을 해 봅니다. 우리가 원수를 사랑하는 궁극 목적은 그들도 원래 우리와 같은 하느님의 자녀였다가 떨어져 나간 사람들이기 때문 입니다. 우리의 사랑이 그들을 다시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하느님 안에서의 사랑은 못할것이 없습니다.  단지 우리의 사랑에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좋아하는 사람만 사랑할려고 하는 유혹을 받습니다. 사실 우리가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러한 일을 하면서 상은 받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새로운 계명”‘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 34) 는 말씀과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카 6, 36 )는 말씀처럼 결국 자비와 사랑은  하느님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우리도 완전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이 사랑은 우리가 꼭 실천해야 하는 조건인 것입니다. 

오늘 복음(루카 14, 15-24)의 말씀은 14절에 이어서 15절에서 에수님과 함께 식탁에 앉아 있던 어떤 사람의 말로서 시작합니다. 이 사람은 14절에서 대가를 기대하지 않는 사랑의 실천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불편함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래서 15절에서 "하느님의 나라에서 음식을 먹게 될 사람은 행복합니다.” 하고 말합니다. 이 말은  내세의 행복을 표현하는 전형적인 희브리식 표현이라고 합니다. 14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보상을 기대하지 않는 사랑을 실천 하는 사람은 행복하게 될 것이라고 하셨는데, 지금  이 사람은 하느님 나라의 잔치에 초대받게 될 사람은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그의 이 말을 받아서 예수님께서는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초대하는” 새로운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당시의 상류층의 관습에 의하면 잔치에 사람들을 초대할 때에는 먼저, 초대를 한 후에 음식을 준비하고, 두 번째 음식 준비가 다 된 다음에 다시 초대를 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 잔치의 초대에 거절할려고 하면, 첫 번째 초대를 받았을 때 거절을 해야 합니다. 두 번째 음식이 다 준비된 이후에 초대를 받았을 때 거절하는 것은 큰 결례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새로운 비유를 말씀하시는 그 내용은 바로 두 번째의 초대를 거절하는 세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이들이 두 번째의 초대를 거절하는 이유들을 살펴봅니다. 

첫 번째 사람은 밭을 샀는데 그것을 보아야 한다는 이유를 대고 있습니다. 사실을 밭을 사기 전이면 밭을 보아야 하지만 그 밭을 사고 난 이후에 나가서 밭을 보아야 한다는 이유를 대는 것은 이치적으로 맞지 않는 이유일 것입니다. 정말 밭을 보러 가야 한다고 해도 첫 번째의 초대에 응한 사람이 두 번째의 초대를 거절할 정도의 이유는 아닐 것입니다. 초대를 거절하기 위한 핑계에 지나지 않음을 보게 됩니다. 세속적인 일 때문에  하느님의 초대에 응하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두번 째의 사람은 자신이 겨릿소 다섯 쌍을 샀는데 그것을 부려 보려고 간다는 이유를 댑니다. 여기서 ’겨리’는 소 두 마리가 끄는 큰 쟁기이고 겨릿소는 겨리를 끄는 소입니다. 겨릿소 다섯 쌍을 샀다는 것은 많은 토지를 소유한 부유한 농부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이 두 번째 이유도 역시 타당성이 없습니다. 소들은 이미 샀고 그 소들을 부려 보아야 하는 일이 꼭 그날 그 시간에 해야 할 정도로 급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이것도 역시 물질적인 일을 핑계대면서 복음의 초대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을 가리키 는 것입니다.

세 번째 사람은 자신이  방금 장가를 들었기 때문에 갈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 사람은 위의 두 사람이 양해를 해 달라고 부턱을 했슴에도 불구하고 양해조차 구하지 않습니다. 그는 거절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슴을 보게 됩니다. 신명기에는 방금 장가를 든 사람의 경우에는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된다(신명 24,5)고 말하고 있지만 그러나 잔치에 참석하지 못할 이유는 되지 않습니다. 만일에 잔치와 결혼식이 같은 날로 겹쳤다면 첫 번째 초대를 받았을 때 그것을 미리 밝혔어야 했습니다. 아마도 그는 처음부 터 초대에 응할 생각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는 참석을 거절한 것이 아니라 아예 초대를 무시했습니다. 세 번째 사람은 개인적인 쾌락 때문에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처음에 초대를 받았던 그 사람들은 초대를 받았지만 거절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자기 들이 스스로 거절했기 때문에 하늘나라의 잔치에 참여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늘나라의 잔치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세상적인 명예나 재산이나 권력 등등의 세상일에 대한 쓸데없는 애착과 집착 때 문에 하느님의 초대를 거절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위의 비유를 통해서 우리는 하느님의 초대는 초대를 받았다는 사실만으로는 특권이 될 수 없습니다.  그 초대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합당한 삶이 바로 그 초대에 응답인 것입니다. 

나 자신을 들여다 봅니다.  나 역시 매 순간을 살아가면서 하느님의 초대을 거절한 순간이 참으로 많았슴을 반성하게 됩니다. 그 순간은  하느님의 초대를 알면서도 유혹에 빠지는 스스로를 합리화 시켰슴을 깨닫습니다. 나의 거절을 용서하시는 하느님을 먼저 생각하는 나 자신을 봅니다. 하느님의 초대의 현실을 본 것이 아니라 유혹에 빠지면서도 자신을 합리화시키는 원하는 것을 봤기 때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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