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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4-08 07:55
   과거를 보는 사람과 미래를 보는 사람 (요한 6, 16-21) - 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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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kchung6767
    조회 :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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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642

2016년 4월 9일 토요일

과거를 보는 사람과 미래를 보는 사람 (요한 6, 16-21)

“3. 여러분 가운데에서 평판이 좋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일곱을 찾아내십시오. 그들에게 이 직무를 맡기고, 4 우리는 기도와 말씀 봉사에만 전념하겠습니다.” (사도 6, 3-4)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요한 6, 20)

교회에 봉사하는 사람의 조건에 대해서 오늘 독서인 사도행전에서는 평판이 좋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이라고 제시합니다.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이 주변의 사람들로부터 평판이 좋은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를 위해서 봉사하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세상적인 관점이나 기준으로 판단하고 이를 실천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봉사의 자세가 아니라 이제는 섬김의 자세로 바뀌어야 하는 것입니다. 일이 중심이 아닌 인간이 중심이 되는 봉사일 때 섬김의 자세가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일이 중심이 되면 사람을 판단하지만 인간이 중심이 되면 사람을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섬김의 자세의 본보기는 바로 예수님을 통해서 알 수가 있습니다. 섬김을 받기 위해서가 아닌 우리를 섬기러 오신 예수님이기 때문입니다. 섬기기 때문에 자신의 목숨을 내어 놓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예수님을 보면서도 예수님의 본질이 아닌 겉모습을 보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인간은 이 세상에 던져진 존재로 살아갑니다. 자신의 뜻에 의해서가 아닌 하느님의 뜻에 의해서 던져진 존재인 것입니다. 전혀 모르는 세상에서 주어진 삶, 인간은 성숙해 가면서 이러한 세상과 더욱 적극적으로 대면하게 됩니다. 

성숙한다는 것은 바로 자신의 한계를 깊이 깨달아 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숙한다는 것은 바로 세상 안에서 나의 한계를 주님 안에서 극복해 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성숙한다는 것은 바로 세상 안에서의 행복의 추구에서 이제는 하느님 안에서의 행복추구의 삶으로 바꾸어감을 말합니다. 이는 나를 죽이고 예수 그리스도가 삶의 중심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세상에서의 행복은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실속이 없습니다. 영원할 것 같은데 순간입니다. 완전한 것 같은데 불완전합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의 삶은 외적인 행복의 삶을 살아가지만 실제는 불행하다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이들이 불행한 이유는 바로 ‘교만’에 기인한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은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으면서 이웃에게 짐을 지우며 살아가는 존재들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어디를 가나 윗자리에 앉기를 좋아하고 시장에서는 인사받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입니다. 기도를 하기 위해서 성전에 가서도 가장 앞자리에 앉으며 머리를 높이들고 기도합니다.  하느님을 앞세워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의 행복의 이면에는 하느님의 실망과 인간들의 눈물과 땀이 있습니다.  하지만 겉으로는 불행하게 보이지만 참으로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님 만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저에게 오시는 예수님께서는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이 나오게 된 배경을 살펴보면,  예수님께서 오천명을 먹이시는 기적을 일으키십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러한 능력을 보고 난 뒤에  억지로 예수님을 모셔다가 자신들의 임금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이를 아신 예수님께서는 혼자서 산으로 올라가십니다.  요한은 예수님께서 기도하러 가셨다는 설명은 하지 않고 있지만 마태오 복음과 마르코 복음은 기도하러 가셨다고 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예수님께서는 기도하러 산으로 가셨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에서 조그마한 고깃배를 타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이들은 캄캄한 밤중에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바다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봅니다. 유령인가 보다 하면서 두려워합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탈출기에서 하느님께서 당신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나는, 나다’ . 바로  하느님의 언어를 그대로 사용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나는 하느님이다.  나를 믿으면 지금의 위험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말씀을 은연 중에 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요한 복음에는 없지만 마르코와 마태오는 이 상황을 구체적으로 묘사합니다. 베드로의 대답이 걸작입니다. ‘주님, 만약 당신이 주님이시면, 나를 물위로 걸어오라.’ 명령하셔서 걸어오게 하십시오.’ 하고 말합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예수님께서 “오너라.”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배에서 내려 물위를 걸어 예수님께로 갑니다.  예수님의 한 마디에 베드로는 자신의 전 삶을 배 밖으로 던집니다. 물 위를 걷습니다. 비록 폭풍우가 치고 있었지만 예수님 만을 바라보기에 이 폭풍우가 보이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를 통제하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얼마를 걸은 후에 베드로가 예수님을 보는 대신에 폭풍우를 보게 됩니다.  뒤를 돌아봅니다. 너무 멀리와서 이제는 다시 배로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보는 사람은 미래를 보지만 예수님을 보지 않고 환경을 보는 사람은 과거를 보는 것입니다. 뒤를 돌아본 베드로는 물 속에 빠집니다. 무엇이 그를 뒤로 보게 했습니까? 우리의 묵상 소재입니다.

바로 우리의 행복과 불행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앞으로 나아가면 행복이 있지만 예수님을 보지 않고 세상을 보는 그 순간 불행이 시작됩니다. 세상을 이기는 행복은 예수님께 있고 행복을 이기는 불행은 바로 세상에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세상에 던져진 존재인 우리는 그 던져지는 순간부터 모험적인 인생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나를 세상으로 보내신 그분은 당신 만을 보고 세상의 여정을 하라고 하십니다. 나 혼자인 세상은 두려움의 세상이지만 하느님과 함께하는 세상은 바로 두려움을 이기는 세상인 것입니다. 같은 세상을 살지만 한 편은 행복의 나라이며 한 편은 불행의 나라인 것입니다.

행복의 나라를 살아가는 삶은 바로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고 말씀하시는 그분을 신뢰하고 따르는 삶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면서 주님 안에서 세상을 이기는 행복을 살아가고자 다짐합니다. 믿음과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삶을 살아가는 하루이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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