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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3-09 07:29
   보내신 분의 뜻을 추구하는 삶(요한 5, 17-30) - 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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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kchung6767
    조회 : 1,8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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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615

2016년 3월 9일 수요일

보내신 분의 뜻을 추구하는 삶(요한 5, 17-30)

30 나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 나는 듣는 대로 심판할 따름이다. 그래서 내 심판은 올바르다. 내가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추구하기 때문이다.”(요한 5, 24)

오늘 아침에  저에게 오시는 예수님께서는 ‘믿음’의 중요성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하루를 시작하면서 두려움이 있느냐? 하시면서 질문하십니다.  이 질문을 들으면서 예수님의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마태 11, 28-30)는 말씀이 마음에 다가옵니다. 

여태까지는 이 말씀 수없이 읽고 들었지만 마음 속 깊이 와 닿지 않았는데 오늘 갑자기 이 말씀이 위로의 말씀으로 다가옵니다. 그러면서 깨닫습니다. 어쩌면 나는 신앙을 갖고 살아간다고 하면서도 하느님의 기적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왔나 봅니다. 말씀을 받아들이고 믿기보다는 일상에서 하느님의 기적을 통해서 하느님을 찾을려고 했기에 이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나 봅니다. 하지만 지금 비로소 깨닫습니다. 나의 믿음이 체험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서 출발해야 함을 깨닫습니다. 말씀을 듣고 믿음로서 그 말씀이 저의 삶에서 현실화됨을 체험합니다. 

영원한 삶에 대한 갈망은 모든 사람에게 있습니다. 순간을 살면서도 영원을 사는 사람이 있고 영원을 살면서도 순간을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일반적인 우리의 시간 개념은 크로노스라는 시간입니다. 일분이 지나면 이분이 오듯이 순서적인 시간의 흐름입니다. 하지만 창조적인 시간 개념은 하느님의 시간입니다. 일년이 천년같고 천년이 일년 같은 시간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어떠한 시간의 개념을 갖고 사느냐에 따라서 어떠한 시간을 사는가가 결정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와 자신의 관계를 말씀해 주십니다. 유다인들은 예수님께서 자신을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믿지 못하고 오히려 예수님께서 당신을 하느님과 대등하게 하셨다고 해서 예수님을 죽일려고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이는 영생을 얻고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는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갔다(요한 5, 24). 하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영원을 살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십니다. 당신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그리고 당신을 보내신 분을 믿는 것을 통해서 우리는 심판도 받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존재에 대해서 의심하던 사람이 하느님이 계시면 기적을 보여주십시오 하고 청합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기적을 체험합니다. 하느님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기적으로 시작하는 믿음은 그렇게 오래가지 못합니다. 불완전합니다. 더 큰 것을 요구하게 됩니다. 기적을 체험하면 지금보다는 믿음이 깊어질 수는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홍해바다를  건너는 엄청난 기적을 체험한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느님을 찬앙하고 기뻐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믿음은 3일 만에 불신으로 바뀝니다. 민수기 20장 2-5절을 보면,  그들이 광야에 이르렀을 때 마실 물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모세에게 시비를 걸면서 불평을 합니다. 하느님을 원망합니다.  표징을 보고 믿는 믿음은 이렇게 쉽게 약해지고 의심하게 되고 더 큰 기적을 보여주지 않는다고 불평하고 쉽게 돌아서는 것입니다. 

보고 믿는다는 것이 확실한 믿음 같아도 이것이 바로 함정입니다. 뭔가 하느님께서 보여주면 잘 믿을텐데 합니다. 이런 믿음은 마귀에게 엄청 휘둘립니다. 마귀는 이런 장난의 선수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하느님의 일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먼저 알고 믿음으로 살아감으로 체험으로 알게 됩니다. 희브 11, 3을 보면, “믿음으로써, 우리는 세상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마련되었음을, 따라서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에서 나왔음을 깨닫습니다.이 모든 세계가 하느님에 의해서 창조되었다는 것을 믿음으로 알게 됩니다.” 하고 말합니다. 믿음으로 나아가는 사람에게는 하느님께서 체험을 주십니다. 

“나의 형제 여러분, 갖가지 시련에 빠지게 되면 그것을 다시없는 기쁨으로 여기십시오.” (야고 1, 2)하고 말합니다. 

체험에 의존하는 믿음을 갖는 사람들에게는 이말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야고버 사도는 어려움을 당하면 기뻐합니다. 인내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환란이 오면 사도에게 기쁨이 일어난답니다. 야고버 1장 5절을 보면, “여러분 가운데에 누구든지 지혜가 모자라면 하느님께 청하십시오. 하느님은 모든 사람에게 너그럽게 베푸시고 나무라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면 받을 것입니다.” 

먼저 믿음으로 구하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의심없이 구하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구하면 반드시 주시는 분이십니다. 실제로 말씀입니다. 먼저 의심하지 말고 믿어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렇게 믿음의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체험을 해야 믿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하느님을 알고 하느님을 체험하는 일이 중요한 것입니다. 

토마스가 부활하신 예수님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동료들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보고서야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요한 20, 27을 보면, “예수님께서 토마스에게 이르셨다.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보지 않고 믿는 것이 복되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지 체험을 해보고 믿을려고 합니다. 하느님이 정말 사랑하시면 나에게 좋은 일들을 해 주실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잘못된 믿음입니다. 우리는 이미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증거를 갖고 계십니다.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오신 예수님과 돌아가신 십자이가입니다. 

‘믿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이 믿음은 내 몸과 마음과 목숨을 다하여 믿는 것입니다.  입으로만 고백하는 믿음이 아닙니다. 나의 삶을 변화시는 믿음입니다. 일상을 통해서 드러나는 믿음입니다. 

세상을 믿는 것에서 하느님을 믿는 것으로 넘어감은 한계의 시간에서 영원의 시간으로 넘어가게 합니다. 세상이 갖는 한계를 넘어서 초월의 세상으로 넘어갈 수가 있게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주는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세상 안에서 세상이 주는 두려움과 한계를 넘어서는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믿음을 갖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말씀과 함께하는 삶이 필요합니다. 기도는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을 얼마나 많이 받고 있나를 깨닫게 합니다.  말씀은 이 세상을 통해서 하느님의 현존을 목격할 수 있는 힘을,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를 하느님을 느낄 수 있는 마음을 갖게 합니다. 이 말씀이 바로 세상을 살면서도 세상과 구별되는 삶을 살아가게 하는 힘인 것입니다. 이 말씀이 우리가 하느님께 더욱 가까이 다가가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를 사랑하셨듯이 우리도 동일하게 아버지를 사랑할 수 있게 합니다. 

영원을 살아가는 사람이기에 희망이 있고 감사할 수 있으며 모든 부정적인 생각에서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의 모습이 바로 세상사람과 구별되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인 것입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말씀을 마음에 담고 시작하고자 합니다. 삶의 현장에서 믿음을 증거하는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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