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570
2016년 1월 16일 토요일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는 삶”(마르 2, 13-17 )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마르 2, 17)
오늘 아침에 오시는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언제나 사람들의 필요를 먼저 생각하시는 예수님께서 오늘은 나에게 무엇을 원하실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참 사랑은 나에게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에서 나를 바라보는 것임을 알려주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오늘 복음의 앞부분에는 이웃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를 치유해 주셨던 예수님께서 오늘은 세관원인 알패오의 아들 레위를 부르십니다. 여기서 레위는 마태오 복음에서는 세관에 앉아 있는 마태오라는 세관원을 그리고 루카 복음 5장 27절에서는 세리 레위라고 합니다. 이들이 동일 인물이고 열 두 사도 중의 한 사람이라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우리는 여기서 동일 인물로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보시고 “나를 따라라” 하고 말씀하시자 레위는 ‘모든 것을 버려 둔 째 일어나서 예수님을 따랐다고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세리의 집에가서 식사까지 하십니다. 당시의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식사는 일종의 거룩한 의식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있어서 함께 한 식탁에서 식사를 한다는 것은 함께 식사를하는 이들을 자신의 사람으로 받아들이고 환영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한다는 것은 자신도 죄인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고 계시는 것을 보고 있던 바리사이들이나 율법학자들이 예수님의 이러한 행동에 대해서 비판하고 불만을 드러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미 당신은 죄인이 아니신 분이시지만 사람들을 사랑하는 일이라면 당신 스스로 죄인이 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던 분이십니다. 당신께서 세례자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으셨던 것부터 간음한 여인을 단죄하지 않으셨던 그러한 일들을 통해서 우리는 예수님의 이러한 생각을 엿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고 하시는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그 해답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스스로가 환자임을 아는 사람은 당연히 병을 고치기 위해서 의사를 찾아갈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중병을 앓고 있으면 있을수록 더 많은 병원비를 지불할 준비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중한 병에 걸려 있는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레위는 자신이 참으로 큰 죄를 짓고 살아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동시에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분께는 영원한 생명이 있슴을 알기에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따라 나설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면서 세상적인 것 때문에 만사에서 하느님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너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는 삶을 살아라.” 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을 찾는 마음이 간절하면 간절할 수록 세상에 숨겨진 하느님이 나와 동행하는 하느님으로 다가오게 될 것입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하느님께서는 나를 당신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초대하십니다. 하느님의 초대는 항상 부담이 따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부담을 감당하고 살아간다면 언제나 우리에게는 행복이 있슴을 믿습니다.
신앙인으로 살아가면서 항상 하느님의 초대에 열려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내가 필요할 때만 하느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이제 다시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매 순간 순간을 하느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고자 다짐합니다. 오늘 하루가 하느님과 동행하는 하루가 되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