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305
2015년 3월 11일 수요일
율법이나 예언서를 완성하러오신 예수님(마태 5, 17 - 19)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 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마태 5, 17)
오늘 말씀 중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율법이나 예언서들은 구약성경을 말합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율법이나 예언서들은 구약성경에 담겨져 있는 하느님의 말씀과 계명과 율법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당시의 바리사이들이나 율법학자들이 보기에는 예수님의 가르침이나 활동이 율법을 무시하는 것처럼 보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한 그들의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는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완성하러 왔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 하시는 완성의 의미는 이러한 율법이나 예언서가 담고 있는 의미가 제대로 드러나는 것을 말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율법이나 예언서를 완성하러 오셨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완전한 실천보다는 이들에 담겨져 있는 참 사랑의 의미를 깨닫게 하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 사랑에서는 어느누구도 제외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우쳐 주시는 것 같습니다.
완성하러 오신 예수님은 형식과 외형을 중시하는 사람들에게 원래의 정신으로 돌아가도록 하시기 위해서 오셨다고 합니다. 자신의 마음 속에 바벨탑을 쌓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 바벨탑을 흐물고 기도의 탑을 쌓기를 원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남의 눈에 들어있는 티끌이 크게 보이는 사람들에게 이제는 자신의 들보를 바라보게 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나에게 잘못을 한 사람에게 일곱 번의 일흔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지난 일요일 강의를 시작하면서 “여러분들은 왜 가톨릭 신자가 되었습니까?” 하는 질문을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갑작스런 질문에 당황하기 시작하십니다. 여기 저기서 ‘행복’을 위해서 '참 평화'를 누리기 위해서 ‘구원받기 위해서’라고 답을 했습니다. 어떤 답도 틀리지 않지요. 그런데 우리가 신앙을 갖고 살아가는 이유는 구원을 받기위해서 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죄로인해 상실한 하느님의 모상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그들로 인해 쫓겨났던 에덴동산으로 돌아감을 말합니다.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그런데 이를 달리 표현하면 하느님께서 주인이 되시는 삶으로의 회귀입니다. 구원은 하느님의 나라에서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 나라는 하느님이 통치하시는 나라입니다.
모든 존재의 가치는 존재케 한 원존재에 의해서 가치가 결정될 것입니다. 그 가치는 어떠한 것이든 자신이 존재하는 목적에 얼마나 합당하게 사용되느냐에 따라서 가치가 결정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나를 생각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얼마나 귀한 존재로 생각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결국 내가 얼마나 사랑받는 존재인가에 따라서 자신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 사랑을 참으로 느끼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서 죽게까지 하시는 존재입니다.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가치를 지니고 있는 소중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나를 이렇게 소중한 존재로 사랑하시는데 나는 이를 깨닫지 못하는것입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자신을 과시할려고 하는 사람들을 자주 목격하게 됩니다. 자신이 들고 다니는 가방이나 타고 다니는 차, 아니면 살고 있는 집... 등으로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또한 그들의 그러한 가치과시적인 삶의 형태를 부러워하는 나를 발견할 때도 있습니다. 기도가 필요합니다. 그럴수록 하느님께로 더욱 돌아가야 합니다. 기도는 이러한 소유중심의 삶에서 나를 존재 중심의 삶으로 살게합니다.
예수님께서 율법이나 예언서를 폐기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오셨다는 것의 참의미는 바로 우리에게 너의 존재의 가치를 회복하라는 것으로 들려옵니다. 소유하는 것으로 자신을 과시하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존재케하신 그분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아서 자신의 존재가치를 높여가는 삶을 살게하기 위해서 오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소유의 삶에서 존재의 삶으로 회복하는 그것이 구원임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바로 그러한 삶이 하느님이 주인이신 삶인 것입니다. 참된 구원의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구원에는 어떠한 사람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오늘 하루 만이라도 당신께서 선물로 주신 이날이 내가 주인이 되는 날이 아닌 당신이 주인이 되는 하루이기를 다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