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263
2015년 1월 20일 화요일
거룩한 내가 나의 삶의 주인이 되는 삶
하느님은 불의한 분이 아니시므로, 여러분이 성도들에게 봉사하였고 지금도 봉사하면서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보여 준 행위와 사랑을 잊지 않으십니다(히브 6, 10)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아들은 또한 안식일의 주인이다.”(마르 2, 27-28)
어제 우리는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 비유의 말씀은 바로 새 것과 낡은 것은 함께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새로운 가르침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우리가 새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사람이란 어떠한 사람일까를 질문해 봅니다. 과거에 매여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자신의 고정관념에 집착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요한복음 3장을 보면, 니코데모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니코데모에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이 새 사람입니다.
오늘 복음은 어떠한 사람이 새 사람인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보여주십니다. 안식일에 대한 생각입니다. 안식일의 노예로 살아가던 우리에게 이제 우리가 안식일의 주인임을 깨우쳐 주십니다. 안식일의 존재이유는 바로 우리 인간을 위함임을 깨우쳐 주시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실 때 모든 창조물은 인간의 관리하에 두셨습니다. 그런데 이 관계가 인간이 죄를 범한 뒤에 하느님의 위치에 인간이 들어와 있고 인간의 위치에 하느님이 존재하는 것으로 바뀌어졌습니다. 주와 종이 뒤바뀐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필요한 만큼만 사용하면 되는 그보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할려고 하는 욕심 때문에 필요한 것의 노예가 되어버린 인간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탄은 사람을 서로 비교하게 합니다. 비교에 의해서 상대적으로 더 많은 소유에 욕심을 갖게 합니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필요한 만큼’의 개념이 사라집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다시 필요한 만큼 소유하고 활용하는 사람으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에 죄가 들어와 ‘주와 종’의 위치를 바꾸어 놓았는데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 찾아 오시는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새로운 질서, 새로운 사고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 새로움의 원천은 ‘돌아감’입니다. 인간을 사랑하셨던 그 하느님의 사랑에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에 의해서 창조되었던 그 때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내가 포기해야 하는 것이 무엇일까를 살펴봅니다.
어부였던 사람들이 포기하고 예수님을 따랐던 모습을, 세관원이었던 레위가 포기하고 예수님을 따랐던 모습을 봅니다. 그리고 요한의 두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랐던 그 모습도 함께 봅니다. 이들은 과거를 뒤로하고 앞으로 나아갑니다. 세상을 놓고서 거룩함을 쫓아갑니다. ‘거룩함’이란 하느님과 연관을 맺는 것입니다. 따라서 세상과의 연관을 끊고서 나아가지 않으면 하느님과의 관계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많은 고민과 어려움이 있습니다. 너무 많은 생각은 선택을 머뭇거리게 합니다. 이 머뭇거림이 하느님께로 나아가고자 하는 나를 잡습니다.
예수님을 따랐던 사람들은 ‘즉각적’이었습니다. ‘곧장’ 따라갔다고 합니다. 이 말이 많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부분적인 포기로서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하고 난 뒤 혹은 준비를 하고’라는 이유는 새로운 사람이 되는 가장 큰 훼방꾼입니다. 새로움의 추구는 즉각적이고 전적인 투신을 의미합니다. 어려운 일이기에 주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내가 나의 삶의 주인이기를 희망합니다. 그러한 나는 하느님과 관계를 맺는 나입니다. 거룩한 내가 나의 삶의 주인인 하루를 시작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