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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4-09 14:46
   “와서 아침을 먹어라.”(요한 21, 1-14) - 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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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kchung6767
    조회 : 2,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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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330

2015년 4월 10일 금요일

“와서 아침을 먹어라.”(요한 21, 12).

오늘 아침에 다가오시는 예수님께서는 너는 남의 고통에 관심을 두는가 하는 질문을 하십니다. 사람은 일반적으로 자신의 고통에는 관심이 많지만 타인의 아픔에는 그렇게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아마도 인간관계의 문제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좀 더 나은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타인의 고통이나 아픔에 관심을 두느냐 안두느냐에 대한 것은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를 통해서 잘 알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 중에는 비난의 언어와 칭찬의 언어가 비움의 언어와 욕망의 언어가 있습니다. 그리고 고발의 언어와 고백의 언어가 있습니다. 사랑의 언어와 증오의 언어도 있겠고 생명을 살리는 언어도 있고 생명을 죽이는 언어도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따지다 보면 수도 없는 많은 언어들을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다양한 언어들을 사용하면서 살아가고 있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나는 어떤 종류의 언어를 자주 사용하고 있는가? 

언어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수단입니다. 타인의 고통에 관심을 두는 사람은 참으로 아름답게 보입니다. 마찬가지로 아름다운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아름다운 마음을 갖고 있겠지요. 또 어떤 경우에는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죽음의 언어를 생명을 살리는 언어로 위장해서 쓰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사용되고 있는 언어는 고백의 언어가 많을까요 고발의 언어가 많을까요? 생명을 살리는 언어가 많을까요  생명을 죽이는 언어가  많을까요?  건강한 사회는 건강한 언어를 사용할 것입니다. 사랑의 언어는 바로 나의 이웃의 고통을 이해하는 언어인 것입니다. 관계 안에서의 갈등의 원인은 자신 만의 아픔에 관심을 두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비록 사회가 어둡고 긍정의 요소보다는 부정의 요소가 많다고 하더라고 사회 구성원 한 사람 한사람이 타인의 아픔과 고통에 관심을 갖는, 희망과 생명을 살리는 언어를 사용한다면 그 사회는 희망의 사회로, 생명을 살리는 사회로 바뀌어 갈 것입니다.

오늘 고발의 언어를 사용하는 말씀을 봅니다. “당신들은 무슨 힘으로 누구의 이름으로 그런 일을 하였소?” 하고 태어날 때부터 불구자로 태어난 사람을 걷게한 베드로와 요한에게 유다의 지도자들과 원로들과 율법학자들이 질문합니다. 이미 사도들의 말씀을 듣고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장정만도 오천명이 넘었다고 하니 이들이 갖는 불안감은 말로서 표현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 질문을 받은 베드로가 ‘성령으로 가득차서 그들에게 말합니다.’  “그분 말고는 다른 누구에게도 구원이 없습니다. 사실 사람들에게 주어진 이름 가운데에서 우리가 구원받는 데에 필요한 이름은 하늘 아래 이 이름밖에 없습니다.”(사도 4, 12)

성령으로 충만한 베드로의 대답은 결국은 모든 일이 자신이 아닌 예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말합니다. 자신의 영광으로 돌릴 수 있는 순간에 고백의 언어로 그 영광을 예수님께로 돌립니다. 성령이 충만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면서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을 가감없이 보여주었던 베드로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습니다.  두려움과 불안에 사로잡혀 있던 사람이 이제는 스스로 그 두려움과 불안을 주는 사건안으로 자신을 내어놓습니다.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사랑의 새로운 존재양식인 성령은 새로운 사람을 만듭니다. 죽음의 언어 앞에서 생명의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으로 변화시킵니다. 이제 두려움의 언어는 사라졌습니다. 사랑의 언어, 평화의 언어 만이 우리와 함께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봅니다. 당신의 제자들을 찾아가시는 예수님이십니다. 고향에서 다시 고기 잡는 어부로 돌아간 당신의 제자들을 찾아가시어 제자들의 잃어버린 신원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다시 사람을 낚는 어부로 초대하십니다. 아침을 준비해 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와서 아침을 먹어라’고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이 생명의 말씀으로 다가옵니다. 사랑을 느낍니다. 지금 저에게 ‘와서 아침을 먹어라’하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 말씀이 세상을 이기는 힘이 될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생명의 언어를 사용하는 하루이기를 다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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