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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9-09 06:57
   하느님께 전적으로 의탁하는 삶(루카 6, 20-26) - 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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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kchung6767
    조회 : 1,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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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460

2015년 9월 9일 수요일 

하느님께 전적으로 의탁하는 삶(루카 6, 20-26)


행복하여라, 지금 굶주리는 사람들! 너희는 배부르게 될 것이다. 행복하여라, 지금 우는 사람들! 너희는 웃게 될 것이다.(루카 6, 21)


오늘 저에게 오시는 예수님께서 참 행복에 이르는 길에 대해서 생각해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소유함에서 행복을 찾는 우리, 경쟁에서 승리함으로 행복을 찾는 우리에게 하느님 안에서 행복은 ‘오로지 나’ 만을 생각하는 우리에게 이제는 ‘우리와 함께’ 를 생각하게 합니다.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예수님을 바라본다는 것을 이렇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나의 눈으로 생각으로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예수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느끼기 위함입니다. 나의 눈으로 예수님을 바라보고 생각한다면 나의 생각이나 시각으로 예수님을 판단할 오류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루카복음 사가는  네개의 행복선언과 네개의 불행선언을 말합니다. 가난한 사람들, 지금 굶주리고 있는 사람들, 지금 우는 사람들, 그리고 사람들이 미워하고 사람의 아들 때문에 너희를 쫓아내고 모욕하고 중상하면  행복하다고 합니다.  여기서 이들이 행복한 이유는 하느님떄문에 가난하고 굶주리고 울고 그리고 모욕과 고통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안에서 참 행복을 찾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부유한 사람들,  지금 배 부른 사람들, 지금 웃는 사람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너희를 좋게 말하면,  불행하다고 말합니다.  세상 안에서 만족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불행한 이유는 세상적인 달콤함이 이들에게 하느님이 존재하지도 보이지도 않게하기 때문입니다.

이 행복선언을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마태오 복음에 나오는 진복팔단에 대해서 일전에 묵상했던 글을 다시 나누어 봅니다.  

산상수훈은 마태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군중들에게 주시는 첫 번째 가르침입니다. 이 가르침이 산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우리는 ‘산상수훈’(마태 5-7장)이라고 말합니다. 루카복음 사가는 이 가르침이 평지에서 일어난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를 ‘평지설교’라고도 말합니다. 

참 행복에 이르는 8가지의 길을 예수님께서 알려주십니다. 그 가르침의 시작은 바로 ‘마음이 가난함’으로 출발합니다. 그만큼 ‘가난한 마음’을 갖고 살아간다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이 8가지의 참행복에 이르는 길을 간단하게 살펴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보면,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하늘나라가 바로 그들의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하느님께 전적으로 의탁하고 살아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하느님께서 내 삶의 주인이 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동사는 현재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이라도 하느님이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간다면 바로 그 순간부터 우리는 하늘나라가 나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의 행복선언은 ‘슬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위로를 받을 것이기 때문이랍니다. 슬퍼한다고 다 위로롤 받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슬퍼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일을 하다고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을 보고서 슬퍼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하느님의 일이 이루어지지 않음을 두고 슬퍼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들은 하느님으로부터 위로를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동사의 시제를 보면, 슬퍼하는 것은 현재형입니다. 그리고 그 보상은 미래입니다. 그런데 현재 행복하다고 합니다. 이 동사의 시재형에 관심을 두면 비록 지금 슬퍼해도 미래에 이루어질 일 때문에 지금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슬퍼하는 것은 과거의 일어난 일 때문이나 현재의 일 때문입니다. 비록 지금은 슬프지만 그 슬픔은 축복받은 슬픔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느님의 위로가 보장된 슬픔이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의 행복선언은 ‘온유한 사람’입니다.  주님안에서 성실한 삶을 통해서 얻게되는 열매입니다. 온유한 마음은 성령의 열매입니다. 성령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따듯한 마음을 뜻합니다.   바로 이러한 사람은 하느님의 땅을 차지 할 것이라고 합니다. 땅을 차지한다는 것은 상속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곧 하느님이 나의 아버지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행복한 것입니다. 온유한 마음은 바로 아들됨의 성품입니다.

네번째는 ‘의로움에 주리고 목말라 하는 사람’입니다. 지금 현재 하느님의 세상적인 정의의 개념을 넘어서 ‘하느님의 의로움’에 대한 간절한 열망을 말합니다. ‘거룩함’에 대한 열망입니다. 이러한 열망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은 결국에는 만족하게 될 것이기에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는 ‘자비로운 사람’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기에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이웃에게 자비를 베풀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바로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사랑을 하는 사람은 사랑을 입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사랑을 입을 사람입니다. 행복합니다. 

여섯번 째는 ‘마음이 깨끗한 사람’입니다. 이 마음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하느님을 보게될 것입니다. 세속에 물든 마음, 세상적인  출세나 물욕이나 권력과 명예에 물든 마음이 아닙니다. 세상을 넘어선 마음입니다. 사탄의 유혹을 넘어선 마음입니다. 하느님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일곱 번째는 ‘평화를 이루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합니다. 이유는 하느님의 자녀랄 불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땅을 상속 받는 살람은 자녀입니다. 따라서 땅을 상속 받는 사람도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평화를 이루는 사람과 온유한 사람’은 동일한 성품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결국 평화를 이루는 사람은 온유한 마음을 소유한 사람일 것입니다. 

여덟번 째의 행복은 바로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은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합니다. 첫 번째의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받는 선물과 동일한 선물을 받습니다. ‘하늘나라’입니다. 

이 진복팔단은 결국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갖게 되는 행복으로 귀결될 수가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문제의 해결은 마음이 가난함으로 해결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해결의 종작점이 바로 하늘나라인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지향점이 참 행복이라면 그 행복의 길은 ‘가난한 마음’입니다. 이 가난한 마음은 하느님께 전적으로 의탁하며 살아가는 마음인 것입니다. 이 마음이 우리를 참 행복의 근원이신 하느님께로 나아가게 해 줄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목적은 하느님입니다.  하느님을 향해서 살아가다 보면, 이 8가지의 행복은 저절로 우리에게 오게될 것입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주님 안에서 참으로 행복한 하루이기를 기대합니다. 주님께 전적으로 의탁하는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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