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묵상 - 560
2015년 1월 5일 화요일
내가 가진 소중한 것을 내어 놓는 삶(마르 6, 34-44)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마르 6, 37)
오늘 아침에 저에게 다가오시는 예수님은 자비의 예수님이십니다. 주변의 불쌍한 사람들을 보시면 눈길을 돌리지 않는 예수님이십니다. 가진 자에 대한 관심이 아닌 소외되고 힘없는 약자에 대한 관심입니다.
물질에 애착을 가진 사람은 가진 자만을 따라다닙니다. 소유의 노예가 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재물을 소유하는 이유를 모릅니다. 물질에 대한 소유가 필요에 의한 것이어야 하는데 이들에게는 그 필요에 의한 소유추구가 주체를 객체로 만들고 객체를 주체로 만들어 버립니다. 이러한 도식을 깨뜨리는 삶이 참으로 어렵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느낍니다. 겉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아닌 그 사람의 마음을 보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하느님은 사랑이시다.’(요한 1서4, 8)라고 말합니다. 하느님을 알기 위해서는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나는 참으로 하느님을 아는가 하고 질문을 해 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누구다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사랑은 그렇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인간은 누구나 똑 같은 존재입니다. 누구나 소중한 존재입니다. 소유의 유무와 지식의 유무와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하느님의 보편적인 사랑과 인간의 선별적인 사랑과의 차이가 있습니다.
인간을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하신 하느님의 크신 사랑은 우리에게 어떠한 존재도 하느님의 사랑에서 떨어져 있지 않음을 우리에게 알려주십니다.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 하느님을 안다고 하는 이유는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 사랑은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 만을 사랑하는 편협적인 사랑이 아닌 보편적인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어야 할 것입니다. 바로 그 사랑의 모범을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보여주시는 사람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많은 군중들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을 가지십니다. 사랑의 마음입니다. 이미 예수님께서는 이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다 알고 계십니다. 먼저 이들의 간절한 바램을 가르침과 치유로 채워주십니다. 이 순간까지도 군중들은 배고픔을 느끼지 못합니다. 아마도 이들의 간절함에서 한 발 떨어져 있었던 제자들이 배고픔을 먼저 느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여기는 외딴 곳이고 시간도 이미 늦었습니다. 그러니 저들을 돌려보내시어, 주변 촌락이나 마을로 가서 스스로 먹을 것을 사게 하십시오.” 하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하고 말씀하시면서 제자들의 믿음을 시험하십니다. 당황한 제자들은 세상적인 논리로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대답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자신들이 가진 것을 내어 놓으라고 하십니다. 바로 기적은 내가 가진 것을 내어 놓음으로서 시작되는 것임을 알려주십니다.
우리 주변을 둘러볼 필요도 없이 사제로서 살아가는 저의 마음도 하루에도 몇번씩 내가 좋아하는 사람 만을 사랑하는 그러한 유혹을 받습니다. 더 나아가 은연중에 그러한 삶을 살아가고 있슴을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나의 마음 속에도 나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오천명을 희생시키는 그러한 유혹이 있슴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나의 희생으로, 내 자신의 것을 내어 놓음으로 오천명을 살리는 기적을 만들어가고자 합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시편 23편의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어”(시편 23, 1-2)라는 싯구를 묵상해 봅니다. 굶주리고 목말라 하는 군중을 풀밭에 앉게 하시고 그들을 배불리 먹이시는 주님의 모습이 바로 예수님의 모습인 것입니다. 조건없는 내어놓음, 물질뿐만 아니라 시간라과 재능까지도 내어 놓는 삶을 실천하고자 다짐합니다.